<기획-디지털TV 방송>2회-방송계 현황과 과제

방송 3사는 방송의 날인 9월 3일을 맞아 일제히 디지털 방송을 실시키로 했으나 한 달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도 아직 시험방송 시간과 프로그램 제작 등에 대한 확실한 플랜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하루에 몇 시간의 시험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자체 제작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확보한 디지털 장비로는 한 달에 한두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게 방송계 관계자들의 평이다.

이렇게 될 경우 지상파 디지털TV 시험방송은 그야말로 형식적인 차원에 그칠 것으로 우려된다.

방송사에서는 이번 시험방송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시험방송을 해도 당장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수상기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청자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때문에 시청자를 의식한 시험방송이기보다는 시험방송을 통해 기술적인 문제와 프로그램 편성 등의 경험을 축적, 본 방송이 실시되는 내년에 보다 알찬 디지털 방송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말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단 한명의 시청자가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볼 때 아쉬움을 남긴다.

이로 말미암아 방송사들은 적극적인 홍보를 자제하고 있다.

지상파 디지털TV 시험방송이 시작되면 고선명(HD)급의 영화를 당장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일반 시청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사들이 시험방송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데에는 디지털 방송을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장비교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이 아직까지 확정되지 못한 속사정이 있다. 또 디지털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장비와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한 것도 주 요인이 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자금조달 방안

정통부는 디지털 방송이 정착되기까지 향후 5년간 KBS·MBC·SBS 등 방송 3사가 조성해야 할 자금이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이 막대한 자금을 자체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따라 KBS는 수신료 인상을 통해, MBC와 SBS는 광고료 인상을 통해 각각 디지털 전환 자금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KBS는 수신료가 지난 81년 3월 2500원으로 책정된 후 현재까지 20여년 동안 단 1%의 인상도 없었기 때문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게 되는 시점에서 수신료를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MBC·SBS 등은 광고요금 현실화와 중간광고 허용, 방송발전기금 징수율 인하, 광고총량제 등을 재원조달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KBS를 제외한 나머지 방송사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요금의 경우 정부의 물가관리정책과 소비자 부담 정도 등을 고려해 방송광고진흥공사·문화부·재경부 등 관계기관에서 종합적으로 검토,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광고허용량을 시간당 규제에서 일일규제나 주간규제로 전환해 보다 효과적인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방송발전기금과 정보화촉진기금 등을 디지털방송 전환자금으로 지원해 주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방송계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에서는 적극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신료 인상의 경우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고 중간광고나 광고총량제도 시청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방송장비 도입관세 감면 문제도 재경부가 타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계속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낙관할 수 없다.

방송위원회가 구성한 디지털추진위원회에서 이같은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거론, 올해 말까지 구체적인 자금 확보방안을 만들 계획이어서 관계부처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어떤 내용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방송 콘텐츠

디지털 방송은 돈만 있다거나 하드웨어 기술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컬러TV나 VCR의 시장형성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핵심 요소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세계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이 디지털 방송에서도 경쟁 우위에 설 수밖에 것으로 전망된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디지털 방송 환경을 만들어 놓고 나면 정작 돈을 버는 것은 국내 방송사나 프로그램 제작사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프로그램 공급업체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나리오나 프로그램 제작 등에 필요한 장비와 우수한 인력확보는 디지털 방송의 조기 정착과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관계자들은 우리나라 디지털 방송 수신기분야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제작기술 분야는 매우 취약하다고 털어놓는다. 전송분야는 통신산업의 연장선상에서 투자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제작기술 분야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결론적으로 수신기만 갖고 디지털 방송을 잘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제작·송출·전송·수신 등 모든 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 완벽한 디지털 방송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멀티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콘텐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의해 수많은 채널과 매체가 생겨나지만 정작 이 매체에 실어보낼 콘텐츠는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디지털 방송도 콘텐츠없이는 활성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수하고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제작시스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투자가 무엇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 방송사와 독립 프로덕션 등에서 디지털 방송에 걸맞는 시나리오와 프로그램 제작능력을 키우는 것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의 하나로 케이블TV업계는 방송사의 프로그램 독점 구도를 그대로 가져갈 것이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방송사들의 협력을 통한 콘텐츠산업 활성화를 제안하고 있다.

디지털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카메라와 디지털 VCR 등 제작장비를 갖춰야 하는데 최근 지정된 신규 PP업체들은 처음부터 방송환경을 디지털로 구성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

이에따라 방송사에 모든 디지털 방송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하기보다는 다양한 PP로부터 프로그램을 구입해 방영하는 것이 방송산업의 균형적인 발전과 경비절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디지털 방송 전송방식>

최근 방송관련 단체들이 디지털 방송 전송방식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시험방송을 한달여 앞두고 전송방식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으나 재조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지난 1일 「디지털 지상파 전송방식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최근 시청자연대회의,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3개 단체가 공동성명서를 통해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송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는 등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정통부가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화 계획과 관련, 지난 97년 미국의 첨단텔레비전방식위원회(ATSC) 방식을 지상파 디지털 전송방식으로 채택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ATSC의 변조방식인 8-VSB 방식이 유럽의 COFDM 방식에 비해 이동수신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휴대 및 실내수신에 약하다는 것이 재검토를 요구하는 주된 이유다.

또 최근 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ATSC 방식 대신 유럽의 디지털영상 지상파방송(DVBT) 방식을 채택하는 추세고, 당초 미국식을 채택했던 대만도 최근 유럽식과의 비교평가후 방식을 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방송관련 단체들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최근 정통부는 재고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방송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문제들이 대부분 전송방식을 선정하기 이전에 제기됐던 문제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이동중의 수신불량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타 방식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고화질」이냐, 「이동성」이냐를 놓고 고심한 결과 「고화질」을 선택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내 수신과 이동시 수신에 대해서도 실내 수신의 경우 신호 세기와 에코 두가지 팩터에 의해 좌우되며 에코가 원 신호 대비 90%보다 큰 경우에는 COFDM이 VSB보다 유리하나 신호 세기가 약한 경우에는 오히려 VSB가 COFDM대비 우수한 실내 수신 성능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따라서 실내 수신환경에는 두 방식 각기의 취약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두 방식 모두 각자의 취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신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 수신에 대해서도 초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검토한 적이 있었으나, 현재 유럽방식에 이동 수신에 대한 규격도 없는 상태라고 일축하고 있다.

또 미국방식을 선택한 국가는 미국·캐나다·대만·한국이며 남미 및 중국에서도 미국규격을 정식으로 고려하고 있고 유럽방식을 선택한 국가는 기존 PAL방식을 사용하는 국가로 유럽의 영향권화에 따른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방송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ATSC의 문제점은 기존의 1, 2세대 장비를 시험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며 최근 파이어니어가 발표한 기술과 한국의 LG가 개발하는 4세대 장비는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ATSC 진영이 내놓을 새로운 기술은 유럽의 전송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듀얼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는 9월 시험방송을 거친 뒤 불가피하게 전송방식을 바꾼다 하더라도 기술과 장비에 부과되는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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