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9회-대영백과사전의 교훈

「대영백과사전의 교훈」

대영백과사전(일명 브리태니카)은 231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백과사전의 대명사다.

1768년 영국 스코트랜드에서 설립돼 1920년 그 소유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후에도,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백과사전으로서의 명성을 지켰다. 특히 이 회사의 영업사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잘 훈련된 끈질기고 적극적인 막강한 세일즈맨들로 이름 나 있다.

1990년만해도 대영백과사전은 자녀교육에 관심이 높은 중산층 가정의 부모들을 중심고객으로 해 6억5000만달러라는 사상 최고의 매출을 올리며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1994년 이 회사의 매출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글로리아라는 회사에 뒤지는 업계 3위로 밀려났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로열브랜드로 남이 따라잡지 못할 것같던 대영백과사전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원인을 살펴보니 두 회사가 시장에 내놓은 CD롬 백과사전에 밀렸던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사업은 엄청난 투자와 노력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CD롬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출판업계의 뿌리를 뒤흔들만큼 큰 환경의 변화였으나 대영백과사전은 그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1500달러 이상하던 대영백과사전은 50달러밖에 안하는 CD롬 백과사전을 가격면에서 당해낼 수 없었다. 더구나 한 카피의 원가가 1.5달러밖에 안하는 CD롬과 비교할 때 대영백과사전은 250달러의 원가에 영업사원 판매수당을 500달러나 지불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영백과사전의 경영진은 CD롬을 어린이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했다. 경쟁사의 CD롬 백과사전을 슈퍼에서 파는 3류 백과사전의 내용에 무료 오디오 및 영상물을 합쳐놓은 저질품 정도로 판단하고 고객은 여전히 대영백과사전의 명성과 품질을 택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CD롬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백과사전 출시를 오히려 크게 반긴 것이다.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자 대영백과사전은 뒤늦게 CD롬 형태의 백과사전을 만들기로 결정하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그 회사 백과사전의 정보량이 경쟁사의 CD롬 백과사전보다 일곱 배나 커서 그 만큼 작업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가격이었다. 이 백과사전으로는 500달러나 되는 영업사원 판매수당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CD롬으로 만든 후에도 영업사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이를 백과사전에 끼워 팔았고 CD롬만 원할 경우에는 1000달러를 받았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고가정책은 잠깐동안 영업사원들을 만족시켰지만 곧 매출이 급속히 떨어졌고 결국 1999년에는 회사가 헐값에 다시 팔리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 대영백과사전의 몰락은 백과사전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산업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첫째는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 신기술의 도입을 소홀히 하면 크게 성공한 기업일수록 변화한 환경에서 더욱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CD롬 백과사전은 디지털 시대에 신기술이 얼마나 쉽게 산업간의 벽을 허물 수 있으며 또 경쟁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두번째 교훈은 성공한 기업일수록 그 동안 다져온 가치관과 기업문화의 전통에 대한 미련 때문에 경영진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영백과사전은 시장조사를 통해 고객들이 자신의 자녀 학업에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백과사전을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과사전보다는 PC를 더 사주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아가 백과사전이 CD롬에 담겨 무료로 배포될 수도 있다는 발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220여년간 힘들게 쌓고 지켜온 브랜드가 변화된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끝에 값싼 CD롬에 5년여만에 두 손을 들 수도 있는 디지털 시대에는 어제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기약하지 못한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오직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생각과 행동으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만이 성공할 뿐이다.

<한국IBM 마케팅 총괄본부 수석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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