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모르고 앞만 보며 달리고 있는 첨단 정보기술(IT)의 종국적인 발전상은 무엇일까. 아마 미래 디지털사회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인간다움」과 「복지실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상현실(VR) 기술은 향후 가장 유력한 복지 IT기술로 집중 조명을 받을 만하다.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VR는 개개인의 생활을 재창조할 수 있을 뿐더러 나아가 범사회적인 IT기술로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게임의 그래픽 정도에 머물고 있지만, VR기술이 우리의 생활 곳곳을 파고들 때에는 「이것이 현실이라면 감히 시도해보지 못할」 갖가지 상황연출을 제약없이 실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취재팀이 선진국의 VR연구개발 현장을 둘러보며 확인한 바는 이제 그 상용화단계가 눈앞에 성큼 다가섰다는 점이다. 취재팀은 VR기술과 관련,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런던의 UCL(http://www.cs.ucl.uk) 컴퓨터연구센터를 방문해 다채로운 분야의 응용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다.
런던 UCL이 상용화에 힘 쏟고 있는 VR관련 프로젝트는 크게 4가지. 가상리허설과 대인기피증 치료법, 3차원 신체모델링, 진화컴퓨팅 등이 그것이다. VR기술의 폭넓은 응용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들 분야에 우선 시야를 집중한 이유는 「당장」 활용할 부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리허설은 연극·영화·퍼포먼스 등 각종 공연의 예행연습을 VR로 해결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공연이 성공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는 참여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리허설을 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공연물의 규모가 커지고 현지촬영 등이 많아지면서 배우들은 시간과 지리적 제약을 큰 어려움으로 느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VR는 배우 개개인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고도 개별적인 예행연습을 도와주는 솔루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관장하는 멜 슬레이터 교수의 설명이다. 때문에 UCL의 가상리허설 프로젝트는 영국 공영방송인 BBC 리서치센터의 특별 의뢰를 통해 추진되고 있다. 슬레이터 교수는 가상리허설 환경구축을 위해 크게 △공연장의 3차원 모델링 △가상배우(대리인)인 아바타 구현 △대사의 전달방법 등이 핵심요소라고 강조한다. 슬레이터 교수팀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 그동안 4차례의 가상리허설을 가졌으며 현재 기술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있다.
슬레이터 교수팀의 대인기피증 치료법은 VR기술이 사회복지부문에 직접 활용될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각별한 사업이다.
이번 취재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이 고소공포증·광장공포증 등의 정신질환에 이미 VR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슬레이터 교수팀은 한걸음 더 나아가 가상으로 차려진 관객무대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토록 하는 대인기피증 치료시스템을 지난 98년부터 개발중이다. PC와 헤드마운터(HMD)가 웅변·화술 학원을 대신하는 셈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5분 가량 이 시스템을 사용해 본 결과, 가상관객들은 서로 잡담을 늘어놓거나 야유를 보내기도 하는 등 생생한 현장감을 보여줬다. 이런 점에서 대인기피증 치료시스템은 △실제상황과 유사한 다양한 무대환경 △환자의 대화에 대한 관객의 즉각적인 행동반응 △각종 상황연출에 따른 환자의 반응점검 등 세가지가 중점 구현요소다. 슬레이터 교수는 『참여하는 가상청중들을 대인기피증 종류에 따라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며 또한 『이때 환자의 심장·체온 등 신체변화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3차원 신체모델링은 UCL이 소개한 VR실용화기술 가운데 가장 상업적인 색채가 강한 프로젝트였다. 의류패션 전자상거래(EC)와의 직접 접목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EC산업에서 미국에 비해 뒤처진 영국 등 유럽국가들이 전략 부문으로 육성중인 분야가 바로 의류패션 EC다. 이같은 중요성 때문인지 UCL은 캠퍼스내에 3차원 전자상거래센터를 설치하고 최근 신체모델링 스캐너를 개발 완료하는 등 시스템 상용화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UCL 부총장이자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필립 트렐리븐 교수는 『신체의 디지털영상자료가 EC에 활용됨으로써 네티즌들은 옷을 입어보지 않고도 온라인상에서 선택한 특정의복의 착용모습을 볼 수 있다』며 『물론 고객들의 신체특성정보는 3차원 스캐너 등을 통해 옷을 입은 채로 촬영 가능하다』고 유용성을 설명했다. UCL에서 개발한 3차원 스캐너는 신체 전 부분을 시각화하는 데 불과 7초가 소요되고, 5㎜당 약 10만개의 샘플포인트를 제공할 수 있는 등 기능면에서 탁월하다. 컴퓨터 수치해석을 전담하는 버나드 벅스턴 교수는 『높은 상용화 가능성 덕분에 의류패션 업계와 더불어 군인·공무원·간호원 등 유니폼 보급에 신경쓰는 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화컴퓨팅은 현재 VR가 직면한 기술적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기술이다. 진화컴퓨팅이란 글자 그대로 생물학의 진화이론을 프로그램 알고리듬으로 구현한 이론. 책임자인 피터 벤틀레이 박사는 『구현하고자 하는 VR의 기본적인 상황과 변수를 설정한 뒤 예상되는 새로운 상황변수를 첨가할 때 나타날 각종 진화양상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작업』이라고 원리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체 설계에 응용할 경우, 공기저항 최소화와 충돌완화라는 기본변수에 거친 도로면(산악길)이라는 변수를 추가하면 스스로 완충장치를 설계해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진화컴퓨팅은 VR뿐만 아니라 침입탐지시스템(IDS)·전기회로설계·메카트로닉스·음악·미술 등 실로 무궁무진한 응용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취재를 동행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김규헌 박사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짚어볼 때 VR는 보다 수준 높은 정보사회 구현의 필수 요소기술』이라며 『이제는 삶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복지기술로 인식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상용기자 srkim@etnews.co.kr
서한기자 hseo@etnews.co.kr
김규헌 ETRI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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