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시스 윤종식 사장은 대덕밸리에서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마케팅이 어렵다는 과학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 미국에 수천만 달러어치의 판매계약을 체결하는 등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수출계약을 체결한 직후 윤 사장은 큰 고민에 빠졌다. 만기가 된 한국과학기술원 창업보육센터를 졸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씨텍·아이티 등 다른 벤처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과기원 창업보육센터 입주기간이 지나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센터 직원의 말에 윤 사장은 암담했다.
인터시스는 그간 과기원 창업보육센터에 평당 월 2만∼3만원의 저렴한 비용을 내고 입주해 있었다. 어차피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건물을 옮기려고 했지만 사무실 임대비용은 차치하더라도 그만한 건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 치명적인 것인 사무실 이전에 따른 명함 교체 및 해외바이어와의 연락이 단절된다는 것. 마케팅에 필수적인 주소 변경으로 인한 손해는 신생 벤처기업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윤 사장의 이런 경험은 국내 벤처기업 육성정책의 허실을 드러낸 하나의 예다.
대덕밸리내 과기원 창업보육센터는 국내 창업보육시설 가운데 원조에 속한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벤처집적시설과는 달리 이미 그 이전부터 기술혁신센터 등의 형태를 통해 창업보육기능을 운용해온 케이스다.
창업보육센터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는 있으나 자금과 경영능력이 미숙한 신생 벤처기업에 창업공간을 제공해 주고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 각종 지원을 하는 정부의 창업보육(비즈니스 인큐베이터) 지원제도의 하나다.
현재 벤처기업 지원시책을 주관하는 정부부처는 중소기업청을 비롯해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등. 중기청이 전반적인 부분을 관할하지만 정보통신(정통부)·기초과학(과기부)·산업기술(산자부) 부문에 대해 해당 부처가 벤처정책을 관장하고 있다. 때문에 벤처기업 육성에 따른 부처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창업지원시설에 대한 원칙과 지원수준도 주무부처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정부의 벤처기업 입지지원제도는 창업초기 또는 예비 벤처기업에 대한 보육시설 지원과 기존 벤처기업이 밀집한 시설물에 대한 벤처집적시설 지원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서울 양재·포이 지역이나 테헤란밸리처럼 벤처기업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을 지원하는 「벤처기업촉진지구」와 실리콘밸리 형태의 벤처전용단지인 「테크노파크」까지 등장, 벤처입지시설이 갈수록 다변화하는 추세다.
◇창업보육센터, 부처별로 다양
현재까지 나온 벤처창업 지원시설로는 중기청의 「창업보육센터(BI)」, 산자부의 「신기술보육센터(TBI)」, 정통부의 「정보통신창업지원센터」와 「SW창업지원센터」, 과기부의 「첨단기술사업화센터(HTC)」 등 5가지나 된다.
이 중 대덕밸리는 각 부처가 시행중인 5가지 창업보육센터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우선 산자부 산하 산업기술평가원이 주관하는 TBI센터의 경우 원자력연구소 등 다수가 이에 해당한다. 이 곳에서는 입주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자금·기술·경영 지원이 이뤄진다.
중기청이 지정하고 중진공이 주관하는 BI센터는 연구단지 인근의 일부대학·정부출연연 등에서 운영중이다. 이 곳에서는 수행기관에 설립자금과 일부 공동시설물을 지원하고 있다.
정통부의 정보통신창업지원센터는 대덕밸리내 배재대학에서 운영중이다. 정보통신창업지원센터에 PC나 통신장비 등 공동시설을 지원해 주며 30여개의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다. 또 SW창업부문은 대덕대학내 대전SW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창업보육실 등이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기술창업지원단은 과기부가 지정한 첨단기술사업화센터(HTC)를 설치·운영중이다.
대덕밸리내 정부출연연의 TBI설립 붐도 대단하다.
한국과학기술원 신기술창업지원단 및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업지원센터가 성공을 거두자 대덕연구단지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연구소 특징을 살린 전문 창업보육센터 설립 붐이 일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지난해 말부터 창업보육센터(KRISS TBI)를 설립, 계측기관련 12개 업체를 입주시켰다. 표준연 창업보육센터에는 현재 연구원 출신인 하기소닉(대표 김병극)과 자인테크놀러지(대표 이덕기) 등 4개 업체를 비롯한 표준계측기관련 분야 12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한국기계연구원도 생산시스템 연구시험동에 신기술창업보육센터를 설립, 10여개의 기계관련 전문벤처기업을 입주시켰다. 기계연은 입주할 기업에 대해 향후 3년간 관련 시설과 장비를 활용하도록 하는 한편 별도의 건물을 설립해 이 곳을 기계분야 벤처창업의 요람으로 활성화할 방침이다.
생명공학연구소도 생물산업벤처창업지원단을 설립, 10여개의 생명공학 벤처기업을 입주시켰다.
한국원자력연구소도 지난해 창업보육센터를 설립, 가이아(대표 한필순) 등 13개 업체를 입주시켜 지원중이다. 원자력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들은 신제품 개발을 완료, 창업 1년만에 총 100억원에 이르는 매출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도 산학연공동연구센터를 설립, 20여개의 정보통신기업과 공동연구를 추진중이다.
출연연 창업보육센터 설립은 정부·대학에서 구축중인 일반 창업보육센터와는 달리 전문가와 결합된 전문보육센터라는 점이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특정부문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의 기술창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덕밸리에 새로운 바람이 되고 있다.
특히 해당분야 신기술 동향과 시장동향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으며 제품개발에 따른 기술지원이 용이해 관련 분야 벤처창업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창업보육센터 졸업기업 지원책 시급
그러나 대덕밸리는 조만간 심각한 사무실난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600여개에 이르는 창업기업이 올해 말로 예정된 보육센터 졸업기간이 다가올 경우 사무실을 얻지 못해 서울이나 다른 도시로 이전할 의사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자이온시스템·오픈이앤씨·지란지교소프트 등의 기업은 마케팅을 이유로 서울지역에 사무소를 내면서 상당한 조직을 이전시켰다.
이같은 상황은 창업보육센터에서 보육된 기업이 본격 배출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나 지자체 역시 포스트TBI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어서 대덕밸리의 2∼3년차 벤처기업의 이탈을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큰 문제는 대덕밸리 인근에 100여평이 넘는 사무실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덕밸리 인근인 유성과 탄방동·둔산동·갈마동 일대의 포스트TBI 구축 방안이 지자체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건설비용·부지마련이 쉽지 않은 눈치다.
벤처기업들은 창업보육센터에서 성장한 기업이 본격 배출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더욱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들은 본격적인 마케팅이 이뤄져야 할 시기에 사무실을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영업기회 손실, 자금 손실 등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 기업은 특히 『창업보육센터가 단순한 연구개발 공간을 넘어 마케팅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창업보육센터의 배태기간 연장 또는 이전 후 대책」 등을 호소하고 있다.
중기청은 이에 대해 창업보육센터를 졸업하는 기업에 대해 농공단지·아파트형공장·벤처집적시설 등에 입주시켜 문제를 해소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업체들은 아파트형공장·벤처집적시설의 경우 시설이 부족하거나 임대료가 비싸고 농공단지의 경우 벤처기업 특성상 대도시 중심으로 기술교류와 마케팅을 추진해야 한다며 입주를 외면하고 있다. 포스트TBI 구축은 바로 오늘의 대덕밸리가 안고 있는 문제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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