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덕밸리 1회>벤처인 제언-가자 해외로

윤종식 (주)인터시스 사장

IMF 경제위기에서 정부의 과감한 투자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벤처 창업 붐의 불씨를 당겼다. 실험실 창업, 연구원 창업,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의 이직 등의 현상을 볼 때 그 변화는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우리 사회에 많은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벤처 창업열기는 우리 사회의 고급인력들을 학교·연구소·기업체들로부터 계로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창업열기만큼 간과해서는 안될 요소가 있다.

기술력이 벤처 창업의 핵심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없을 것이다. 즉 저비용·고효율의 구조를 가능케 하는 기술력은 기업이윤과 성장의 원천이다.

그러나 그 기술력이 이익창출의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구매력을 갖춘 상품으로 변화돼야 하며, 이 구매력이 형성된 것이 시장이다.

새로운 아이템과 독창적 기술력, 그것을 기반으로 생산된 상품이라 할지라도 기업의 이익창출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단순한 연구개발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특히 다국적 기업 출현의 추세(물론 많은 원인을 내포하고 있지만) 속에 시장이라는 것은 기업성장의 발판인 셈이다.

가장 우려되는 중요한 요소가 이들 신생기업의 대부분이 국내 시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 시장규모가 새로 태어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기업들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가 되는가 하는 점이다.

반도체·통신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한다면 국내 시장규모만 가지고는 이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의 텃밭이 되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투자규모가 적고 창업이 용이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업으로 하는 신생 정보통신기업의 수는 정보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곡선을 그렸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를 한 번 살펴보자. 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는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규모의 1%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해외 분석기관들은 그 규모를 세계 시장의 0.6%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수치비교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창업한 우리 기업들이 이렇게 조그마한 시장에서 꿈만 꾸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외형만 가지고 볼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기술과 사업성을 인정받고 큰 기업으로 성장시키려는 꿈을 갖지 않는 사업가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심찬 이들 기업은 국내 시장에 머물며 이 작은 시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한국에서 연간 2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소프트웨어 제품이 있다고 하자. 매년 그 수준의 매출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개발인력과 기술지원 및 교육인력, 영업인력들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경을 넘어 눈을 밖으로 한번 돌려보자. 즉 이 제품을 세계 시장을 무대로 판매한다면, 한국의 시장규모가 세계 시장규모의 1%라는 점에 비춰볼 때 단순한 산술계산만으로도 약 2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대부분의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단일 국가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동 제품이 판매된다고 가정하자.

미국의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는 국내 시장의 50배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 경우 미국 단일 국가에서만 1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경영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수치비교는 적절치 않다 하더라도 국내 시장만을 겨냥한 국내용 제품은 과연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까지 생긴다.

현재 지구상에는 200여개의 독립국가가 있다. 세계의 넓은 시장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이 큰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국가의 절대이익을 위해서도 우리나라 안에서 제한된 부를 서로 주고받을 것이 아니라 국제인, 국제기업이 되어서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제문화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익숙해져버린 인맥·접대 등이 우선되는 사업모델은 세계사회에서는 통용되기 어렵다.

차별화된 제품전략, 구체적인 대상마켓에 대한 정의, 대상마켓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마켓팅전략, 또 이들 사업요소를 종합한 투명하고 현실적인 사업계획이 준비돼야 한다.

우수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성공적인 제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 기술을 어떻게 응용하고 포장해서 고객들로 하여금 구매동기를 유발할 수 있을까 하는 연구가 선행돼 차별화한 제품의 형태로 다시 태어날 때 비로소 그 기술은 시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내가 자동차를 생산하니까 3년 안에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식의 막연한 사업계획은 국제 시장에서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자동차 시장에도 트럭·승용차 시장이 따로 있고, 승용차 시장에도 소형·중형·대형차 시장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해외 시장 공략에 영어공부는 필수다.

3년 안에 세계 자동차 시장을 휩쓸 수 있는 기업은 지구상에는 없다.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목표시장을 설정하고 현실성이 충분히 검토된 사업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대상국가의 문화와 언어 습득에도 많은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얼마 전 발표된 세계 20여개국에 판매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제품 안에는 황소의 형상을 가지고 영상처리하는 재미있는 예제가 들어있다.

그런데 인도에 있는 대리점에서 연락이 오기를 소를 예제의 소재로 삼는다면 그런 소프트웨어는 인도에서는 판매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대상국가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황소 예제를 빼기로 했다. 나라마다 비즈니스 관행, 종교, 이념 등이 제각기 달라서 이렇듯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심심치 않게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그 대상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로 발전되기도 한다. 견문을 넓혀야 한다. 세계시장을 상대하려면 많이 보고 많이 듣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요즘 들어 해외 현지법인을 설립했다는 얘기를 주위의 벤처기업들로부터 자주 듣게 된다.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으나, 충분한 사전계획과 검토에 의해서보다는 해외진출이라는 의욕에 앞선 나머지 경영상의 많은 요소들을 무시한 현지법인 설립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은 많은 기업들을 우리는 보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이익기반이 약한 국내 기업들의 현실에서 경영상의 실패는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다.

기업현실과 현지법인 설립의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외진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야만 한다. 세계의 넓은 시장에서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해서 우뚝 설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우리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인 것이다.

가자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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