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한일문화전쟁>중-업계 대응책의 허실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제가 우리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문화정책을 사용했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새 천년의 한국과 일본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문호를 개방하는 시점에서 다시 일제의 침략정책을 거론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는 사상과 정신의 결정체인데다 21세기 산업을 주도할 지식산업의 요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번 제3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맞는 국내 문화 산업계는 낙관론과 위기론이 엇갈린다.

낙관론자들은 빗장을 대폭 열긴 했지만 일본이 경쟁 우위에 있는 대중가요음반, 비디오게임기, 쇼·오락프로그램, 만화영화 등은 제외됐거나 제한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가 순차적인 개방을 단행하면서 업계 스스로가 나름대로 대응 준비를 해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위기론자는 각 부문별 대응력이나 준비 정도를 면밀히 들여다 보면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가장 큰 폭으로 개방된 영화산업은 「쉬리」의 성공과 일본 진출, 40%대에 육박하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낙관론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쉬리」는 일본 현지에서 약 1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수출실적도 18억엔에 달하는 등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유령」 「퇴마록」 「텔미썸딩」 「미술관 옆 동물원」 「주유소 습격사건」 등이 잇따라 일본에 진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일본영화의 역공세가 더 높은 강도로 밀려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에 개봉돼 1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러브레터」의 흥행 하나만으로도 일본영화 국내시장 점유율은 3.5%로 늘어났다. 더욱이 수입계약이 끝나고 개방조치를 기다리고 있던 일본영화 「스왈로테일」 「언두」 「피크닉」 「포스트맨 블루스」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동경의 주먹」 등과 만화영화 「퍼펙트 블루」 등이 개봉되면 올해안으로 일본영화의 시장점유율은 10%를 훨씬 웃돌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시장을 발빠르게 개척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전문 배급사들이 활성화되고 영화제작사들도 OST음반이나 캐릭터상품 등 부가상품을 패키지로 수출할 수 있는 통합적인 마케팅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한국영화가 100년을 통해 이뤄놓은 성과가 단 몇 년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어 가창 음반이 제외된 음반업계는 당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일본시장을 겨냥한 특별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SES가 어느 정도 일본에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고 신나라뮤직·대영AV 등 대형 음반사들이 일본 킹레코드·아뮤즈 등과 제휴, 일본진출을 준비하고 있지만 사실상 댄스음악으로 집중된 국내 대중음악으로서는 다양한 장르를 포진하고 있는 일본음악에 맞서 국내시장을 지키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게임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번 3차 개방으로 일본업체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전략 롤플레잉게임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이러한 게임들은 500만∼1000만원 가량 소요되는 컨버전 비용이 들지않아 어느 정도 시장잠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국내 전략 롤플레잉게임 개발업체들은 일본게임 상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손노리·소프트맥스·마소프트 등이 마케팅력을 강화해 일본진출을 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으나 대부분이 틈새를 공략할 전략조차 세워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은 지상파TV들이 무분별한 수입에 앞장서지만 않는다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우수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다수 수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위원회는 개별 방송사와 전문가들을 모아 대책마련에 나설 계획이지만 일본 방송 베끼기에 바빴던 국내 방송사들이 일본에 역진출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