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가 세계 D램 반도체 업체들의 지난해 성적표를 발표했다.
20.7%를 점유한 삼성전자 1등, 19.3%의 현대전자 2등. 고작 둘뿐인 국내 D램 반도체업체가 1, 2등을 독차지했다.
두 회사의 점유율만 40%에 달해 NEC, 도시바 등 일본 5개 D램 업체의 점유율 26.2%를 크게 앞질렀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D램 반도체 생산국 자리를 확고히 굳힌 것이다.
삼성전자는 무려 7년 연속 세계 D램 반도체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반도체 역사에 이 같은 기록은 전무하다. 이 기록이 깨진다 해도 그것은 한국업체에 의해 이뤄질 것이다.
사람들은 벌써 한국이 세계 D램 반도체 시장 1위라는 사실에 대해 식상해한다. 더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랐다는 점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반도체 사업은 막대한 설비투자와 선발업체의 끊임없는 견제로 1등을 차지하는 것은커녕 시장에서 살아남기조차 힘든 사업이다.
다른 반도체에 비해 가격과 수요 변동이 극심한 D램 반도체 사업은 더욱 그러하다.
80년대 초 우리 업체들은 기술, 자본, 인력 모든 면에서 선발 일본업체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그렇지만 국내 업체들은 그룹 차원에서 미국에 유학중인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고 양산 설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1MD램을 개발한 86년만 해도 2년이나 됐던 선진 업체와의 격차를 4MD램을 개발한 88년에 6개월로 좁혔으며 89년에는 16MD램을 동시에 개발하는 성과를 이뤘다. 지난 92년 64MD램 이후 선진 업체들을 따돌리고 기술 개발을 국내 업체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반도체의 핵심기술인 회로선폭 기술도 경쟁사들에 비해 한 단계 앞선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마의 벽」이라는 0.10미크론 기술에도 한국업체들이 가장 바짝 다가가 있다.
당분간 D램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의 한국 업체에 대한 추격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은 지난해말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 6개사로 구성된 「차세대반도체컨소시엄」에서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내 업체인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이 컨소시엄에 들어간 반면 일본 업체로는 일본의 NEC가 유일하다.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은 올들어 D램 반도체 사업을 축소하는 대신 플래시메모리 등 신규 사업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는 D램 시장에서 더이상 한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최근 대만의 D램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과 유럽 업체와 손잡고 한국 업체에 도전하고 있으나 아직 힘은 미약하다. 생산 규모도 그렇지만 기술력에서 워낙 한국 업체들과 격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반도체 업체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범용 D램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램버스D램, 더블데이터레이트(DDR) SD램 등 차세대 고성능 D램 시장에서도 앞선 양산 체제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도체 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S램, 플래시메모리 등 아직 1등을 차지하지 못한 메모리 시장에서도 곧 1등에 오른다는 전략이다. 일본 업체를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은 PC의 메모리 대용량화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30∼40% 이상 성장한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단순 계산으로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D램 반도체 수출이 120억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국내 업체에 도전할 업체로는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NEC·히타치 합작사, 독일의 인피니온 등이 있으나 이미 뚜렷한 점유율 격차로 국내 업체의 아성을 허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표참조
국내 반도체 산업이 D램 반도체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D램 반도체의 성공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D램 반도체의 성공을 발판으로 최근 다른 메모리반도체사업과 시스템IC사업으로 영역을 한층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반도체컨소시엄에서 나타나듯이 한국은 D램 반도체를 바탕으로 2000년대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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