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산업이 커야 국내 전자산업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품산업보다는 완제품에 치중하면서 부품산업을 소홀히 대접해 왔다. 이런 와중에서도 보이지 않게 세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전자부품이 많이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물론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전자레인지용 부품 등이다. 누구나 한번쯤 들었던 부품들이다. 이들 부품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지금도 업체들은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산업전자부의 원철린 부장이 국내 유일의 전자부품연구를 전담하고 있는 전자부품연구원 김춘호 원장을 만나 전자부품산업의 월드베스트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 부장=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이 아니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B2B(기업간 전자상거래)가 활발하게 구축되면서 전자부품과 같은 분야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시대에서 전자부품업체들의 생존전략은 뭐니뭐니해도 세계 최고의 부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원장=맞습니다. 지금까지 보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부품들은 기술을 갖춘 전문업체들입니다. 월드 베스트 제품은 우선 정통성을 갖춘 전문업체에서 생산됩니다. 세계 정밀모터 시장의 50%를 쥐고 있는 일본 마부치의 경우에서 보듯이 창업 초부터 부품사업만을 영위해온 업체가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으로 월드 베스트 제품은 세계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라는 점입니다. 철저한 기술개발을 통해 AV용 테이프·MR-헤드 등 자성재료 부문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일본 TDK의 제품들이 세계시장을 압도하는 게 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 부장=지난해 기준으로 D램이 세계시장의 38%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CRT·TFT LCD 등 일부 전자 부품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이 일본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양적 측면에서 볼 때 국내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전자부품들의 기술 및 제품 수준 역시 세계 선진 업체들의 대등한 수준에 와 있을까요.
김 원장=지적하신대로 세계 전자부품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국내 업계의 위상은 결코 뒤떨어진 편이 아닙니다. 지난해 국내 전자부품 산업의 총생산액이 약 43조원으로 지난 98년에 비해 12.6% 성장하는 등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제 3위의 생산대국으로 부상했으며 수출은 280억4300만달러, 수입은 218억26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일부 기술의 선진국과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제품별로 가격의 10% 이상을 로열티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트업체의 프리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부품가격 인하요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원 부장=아직도 질적인 수준에선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이 선진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이외의 전자부품분야에서 월드 베스트로 부상할 만한 품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업체들이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는 2차전지나 전통적인 부품인 PCB 등은 이른 시일내에 월드 베스트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향후 월드 베스트 진입이 가능한 부품으로는 어떤 품목이 있을까요.
김 원장=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외에 우리나라가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는 품목으로는 PCB·2차전지·소형 정밀모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PCB기술, SAW필터 기술 등은 이미 세계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장형성 초기의 성장 유망 부품 중 완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부가가치가 큰 미래형 핵심부품으로, 집중적인 개발에 나서야 할 품목으로는 영상처리 및 이동통신용 칩세트와 같은 디지털 정보가전 부품·유기EL·PDP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고밀도파장분할다중전송(DWDM), 광통신모듈, 수동광부품과 같은 광부품들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원 부장=내년에 가면 DVD가 상용화되는 것을 비롯해 초고속 인터넷서비스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오는 2003년에는 IMT2000 서비스가 상용화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전자부품업계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은 급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업체들이 월드 베스트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 원장=세계시장은 디지털 기술의 급성장에 걸맞은 부품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아지면서 대체수요 및 신규수요가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습니다. 국내의 일부 디지털 기술은 선진국과 동등하거나 앞선 수준입니다. 이런 가운데 부품업체들은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합니다. 잘할 수 있는 분야와 잘하는 분야를 선정, 기술투자의 효율성 및 타임-투-마켓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미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부품 가운데 세계시장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품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국산화율이 낮은 수출전략형 전자기기의 관련 핵심부품의 국산화를 통해 부품의 수입대체 및 기기의 국제 경쟁력 배가,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소싱 품목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이외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부품·소재 공용화 및 표준화를 추진해야 하고 국제표준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야 합니다. 다만 특정기업의 시장주도권 확보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기업간 제휴 일반화도 고려돼야 하겠지요.
원 부장=전자부품이 월드 베스트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부와 연구소·대학 등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야할 것입니다. 특히 국가기술개발의 효율적 수행과 기초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학의 고급기술인력의 연구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합니다. 대학은 박사급 고급기술인력의 약 75%를 확보하고 있으나 국가연구개발사업비 지원자금은 8% 수준에 머물고 있을 정도로 취약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다시 전자부품산업 전략의 틀을 짜야 할 때라 봅니다.
김 원장=정부는 중·장기적으로 기술발전의 전망을 제시해 기술개발 주체들의 기술개발 방향을 견인하고 기술개발에 필요한 자금투입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아울러 과제 및 수행자 선정, 관리, 사후평가 등의 절차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간주도의 기술개발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기술개발의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주도의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환경조성 위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것도 정부의 몫입니다.
국책 연구기관은 기관별 전문성 및 보유자원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중장기 연구개발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구기관별 연구계획 수립 및 추진을 핵심 원천기술, 기반기술, 응용 기술별로 구분, 연구기관의 특성에 맞게 비율을 조정하고 기술 상호간의 연계성에 중점을 두어 연구개발결과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기초연구 및 중소기업 상품화 기술지원과제를 수행하고 전문인력양성과 산·학·연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벤처기업과 상호협력체제를 강화하여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개발에 연구비중을 높여 나가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합니다.
<정리=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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