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아파트>사이버아파트 성공의 관건은 포털서비스

2003년 어느 이른 아침, 주부 K씨는 새로 입주한 사이버아파트에서 잠을 깼다. 미리 데워둔 욕조로 들어간 주부 K씨는 편안한 자세로 생각에 잠겼다. 남들 좋다는 사이버아파트로 이사 온 지 벌써 한달이 다 됐다.

주부 K씨는 젖은 손을 뻗어 욕조벽에 설치된 소형 웹모니터를 작동했다. 잠시 후 인근 초등학교 홈페이지에서 어제 아들이 치른 시험성적을 확인한 주부 K씨는 중얼거렸다.

『역시 사이버 과외는 믿을 게 못 돼. 그저 애들은 가정교사가 옆에서 지키고 있어야 공부를 한다니까.』

목욕을 마치고 현관으로 나간 주부 K씨는 인터넷 주문으로 배달된 음식재료를 챙겨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찌개거리와 생선, 야채 등 2, 3일치 먹거리가 산지에서 직송되는 인터넷 식료품서비스 덕분에 장보러 나가는 일이 크게 줄었다.

냉장고에 붙은 웹모니터에서는 인기요리사가 나와 오늘 아침에 배달된 재료로 만들 음식에 대해 설명한다.

처음에는 아파트조합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기본 메뉴에도 마냥 신기해했지만 어느새 TV나 가스레인지를 조작하듯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자신이 사뭇 대견스럽다.

아들을 학교로 보내고 설거지까지 끝낸 주부 K씨는 소파에 앉아 인터넷TV를 켰다. 밤새 도착한 전자우편이 자동으로 검색된다.

미국 출장간 남편이 오늘 새벽에 보내온 영상메일, 동창회에 나오라는 소식, 헬스클럽과 쇼핑권 할인쿠퐁 등 10여통의 전자우편을 체크한 다음 금융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예전에는 전화비, 보험료 납부를 위해 동네 은행에서 줄을 서야 했지만 사이버은행 덕분에 그런 수고는 더 이상 안해도 된다.

주부 K씨는 교육전문사이트로 가서 아들 성적을 위해 주3회 가정교사 서비스를 신청했다. 가정교사 비용이 무척 비싸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전 11시. 오늘 할 일은 거의 끝났다. 주거생활 깊숙이 파고든 인터넷서비스 덕분에 가사노동 시간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주부 K씨는 현관문을 자동보안모드로 맞춰놓고 아파트를 나섰다. 부재시에 누가 찾아오더라도 휴대폰 영상단말기로 즉시 연락이 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주부 K씨는 동창회 모임으로 향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전에 살던 낡은 아파트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사이버아파트가 아니면 불편해서 못살 것 같애. 역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이유가 있어.』

국내 건설업계에 인터넷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아파트 열풍이다.

혹자는 사이버아파트가 건설업자들의 상술에 불과하다는 비평도 한다. 아파트단지에 전용선라인만 깔아놓고서 평당 가격을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한다는 소리다.

사실 사이버아파트에 깔린 고속통신망만으로 입주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아파트의 통신망은 단순히 통로역할(하드웨어)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 사이버아파트의 기능과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콘텐츠다.

건설업자들이 포털서비스업체 설립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도 아파트전문 포털시장이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면서 막대한 콘텐츠 수익 창출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아파트 세대수는 전국적으로 400만 가구로 국내 가구수의 50%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 특히 대도시에서 아파트 거주자의 비율이 높은 현실에서 아파트관련 포털서비스가 국내 전자상거래시장의 핵심축으로 부상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사이버뱅킹, 전자상거래, 온라인민원처리, 커뮤니티 형성, 온라인 교육 등 헤아릴 수 없이 방대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파트관련 포털서비스다.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사이버아파트 보급률은 내년까지 70만∼80만세대. 이 사이버아파트 거주자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포털서비스시장을 두고 주요 건설업체의 경쟁이 치열하다.

현대산업개발과 대림산업 등이 설립한 아이씨티로(http://www.icitiro.com)는 올해 안에 서비스가입 가구를 10만여 세대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주민들간의 자발적인 커뮤니티 형성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 중인 아이씨티로는 오는 6월경부터 본격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며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과거의 공동체 마을문화를 아파트공간에서 구현한다는 목표 아래 구축되고 있다.

삼성물산계열의 시브이네트는 사이버빌리지(http://www.cybervillage.co.kr)로 아파트포털시장에 승부를 걸고 있다. 사이버빌리지는 신규 아파트일 경우 평생동안, 기존 아파트를 사이버아파트로 개축한 경우 2년동안 무료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매력적인 조건을 내세워 아파트입주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세오월드, 케어캠프닷컴, MK랜드, 사이버중앙, 오콘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업체와 제휴를 맺은 사이버빌리지도 오는 6월부터 시험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LG건설도 비슷한 시기 아파트포털사이트 이지빌을 구축하고 연말까지 2만여 아파트세대를 확보할 예정이다.

이지빌은 메디다스를 비롯해 대교, 부동산 뱅크, 하나투어 LG증권, 하나은행, 아이시네 등 17개 업체를 콘텐츠제휴업체로 확보한 상태며 특히 가족별로 ID를 따로 나눠주고 특화된 콘텐츠제공을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포털서비스는 공통적으로 건설업체가 주도하고 있어 초기에는 지역별로 서비스영역이 구분될 가능성이 높다. 또 아파트 포털서비스의 주사용층이 주부인데 반해 포털서비스 구축자들은 대부분 가사경험이 없는 20대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정성껏 준비한 콘텐츠가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주부정서와 괴리감이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아파트마다 깔린 전용선라인이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려면 주부들을 위한 새로운 콘텐츠개발이 시급하며 아파트 포털서비스간 과감한 합종연횡도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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