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급물결 전자상가>(9)상가 성패 상인이 좌우한다

『테크노마트에서 형성된 이 제품의 가격은 12만∼13만원선입니다. 따라서 매장주는 고객에게 사과하고 5만원을 돌려주십시오.』

한 매장 직원이 워크맨을 판매하면서 실제 시장형성 가격보다 5만원 가까이 바가지를 씌워 고객이 항의하자 수입가전매장이 밀집된 4층 테크노마트 상우회 차원에서 내린 판결이다.

지난해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 4층 상우회 사무실에서는 가끔 이같은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4층 상우회 차원의 상가이미지 제고활동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최근에는 이같은 고객과의 마찰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6월 테크노마트 2∼3층에는 「암행어사」가 출두해 상인들의 상거래질서 문란행위를 적발하고 다녔다. 상우회 자체적으로 선임한 암행감찰단원은 6∼7월 두달 동안 한시적으로 3대 상거래질서 문란행위(찍기, 호객, 불친절)와 상인들의 복장상태 등을 체크했고 10여개 매장을 적발해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 및 매장 벌금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체 규약에 따라 상인들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작업인 만큼 큰 마찰을 빚지 않았고 현재는 호객행위 등 상거래 문란행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테크노마트는 최근 층별로 진행됐던 이같은 상거래질서 정비작업을 전체상가 차원에서 실시키로 하고 1억3000여만원의 소비자 보상기금 출연을 골자로 하는 「소비자천국 테크노마트 시대」를 선포하기도 했다. 선포식에서 상인들은 특히 자신의 지난 잘못을 일일이 고백하는 「모의 고해성사」를 진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전자상가 상인들은 『내 물건을 내가 비싸게 판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불친절로 장사가 안돼도 그건 내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또 백화점·양판점과 달리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슷한 매장이 비슷한 종류의 제품을 동시에 팔기 때문에 구조상 호객행위도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인들은 상가를 활성화하고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결국 고객을 끌어들이는 최선책이고 이를 위해서는 상인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과거에는 눈앞의 이익 때문에 상가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스스럼 없이 했던 일부 상인들의 의식이 조금씩 변하면서 「공동이익」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제는 상가질서 확립을 위한 상가 자체 규약이 체계화되고 안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서초동 국제전자센터도 지난달 상인들이 발벗고 나서 대대적인 상가 환경개선작업을 실시, 불친절, 호객행위 근절 등은 물론 금연건물을 선포했다. 또 용산에 몰려 있는 전자랜드·선인상가·나진상가 등 주요 전자상가들도 친절한 상가, 깨끗한 상가가 상권확보의 필수조건이라는 인식아래 대대적인 상가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 상가가 활성화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상인에게 달려있다. 물론 매장 소유주와 상가 관리회사의 역할도 일정 부분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나 고객과의 접점에서 이미지를 전달하는 상인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전자상가에는 아직 산적한 과제들이 많다.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판매가격표시제, 신용카드문화 정착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들 과제는 상인들이 협조하고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이제 전자상가 내에서 상인들의 모임은 점점 그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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