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기업의 싹이 꺾이는가

원철린 산업전자부장 crwon@etnews.co.kr

좋지 않는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고 했던가. 최근 이런 저런 좋지 않는 일들이 벤처기업들한테 닥치고 있다. 기술 사람 자본 이 세가지가 벤처기업의 핵심자원이라고 한다. 이중 자본과 사람에게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블랙먼데이로 코스닥시장의 열기가 식어버렸다는 점이다. 코스닥시장이 가라앉게 되면 벤처기업은 당장 재원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이 뜰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코스닥시장의 이상 열기 때문이었다. 벤처기업들의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벤처기업들이 쉽게 투자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인터넷과 정보통신업체들의 거품론과 함께 블랙먼데이로 상황이 반전됐다.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 나지 못하면서 벤처기업들의 투자재원 원천이었던 코스닥시장이 비틀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이 하나둘씩 벤처기업에 멈칫하면서 벤처기업들이 투자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찌보면 지금의 주식폭락은 당연하다. 증권가의 격언대로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지 미래가치에 의존한 주가폭등은 단기간으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블랙먼데이는 묻지마식의 투자를 해왔던 투자자들에게 벤처기업들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기술력없이 단순히 재테크에 의존한 벤처기업들은 이번 기회에 도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거품이 가라앉으면 벤처기업은 다시 한번 도약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금의 주가폭락은 오히려 벤처기업들의 성장에 있어 거름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벤처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주가폭락보다 더 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수원지법에 벤처기업으로 이직한 직원들의 취업을 막아달라고 제소한 사건이다. 주가폭락이라는 기사에 묻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 기사는 벤처기업의 핵심자원인 사람의 충원과 관련해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6조원으로 국내 제조업체 1위를 차지한 거대한 기업이다. 반도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통신기기 등에서 사상 최대의 수익인 6조원을 거뒀다.

이런 업체가 벤처기업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수원지법에 벤처기업인 N사와 M사로 이직한 연구개발직원 8명의 취업을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의 전업금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한 것이다.

삼성전자측의 주장은 연구개발인력이 옮겨간 벤처기업이 같은 제품을 연구하는 회사라며 이들이 퇴직하면서 동일업종기업에 1년간 종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취업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측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 진다면 벤처기업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벤처기업의 성장은 코스닥의 열기도 있었지만 우수한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몰려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삼성전자도 최근 우수한 인재들의 이탈로 고민했을 것이다. 연구원뿐만 아니라 관리분야의 우수한 인재들까지 모두 벤처기업으로 옮겨 가면서 불안감이 어떤 회사보다도 컸을 것이다. 거대한 둑이 조그마한 틈새로 인해 무너진다. 삼성전자도 직원들이 벤처기업으로 이탈해 간 데서 틈새를 보았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아마도 벤처기업을 걸고 넘어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고민을 감안, 백번 양보해도 삼성전자의 제소건은 사려깊지 못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IBM과 같은 대기업의 인재들이 나와 창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때 IBM 등의 대기업이 벤처기업으로 취업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취업금지신청을 했다라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삼성전자의 고발은 한국적인 상황이다. 관리의 삼성이니까 가능한 발상이다. 벤처기업으로 간 직원들을 고발함으로써 혹시 벤처기업으로 옮겨 갈려고 하는 동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도식적인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벤처기업의 취업을 금지하는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

대기업은 벤처기업보다 쉽게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할 수 있다. 대기업의 우수한 인재들이 벤처기업으로 몰려야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삼성전자와 같은 조치는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싹을 자를 소지도 안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다시 불안정한 벤처기업보다는 안정된 대기업을 선호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주가폭락을 보면서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따라서 우수한 인재들도 이제 벤처기업으로만 몰려 들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들의 인력이탈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법원의 힘을 빌려 임직원들의 벤처행을 제동 걸어야 하겠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벤처기업으로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어떠한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설령 그로 인해 자그마한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대기업이나 정부나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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