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01) 벤처기업

IMF<19>

윤대섭은 창업 때부터 함께 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창업 멤버들은 자를 수 없었다. 창업 동지 가운데 더러는 다른 회사로 떠난 사람이 있지만 자발적으로 떠나기 전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홍 차장에게 그런 설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어떡하겠다는 거요? 못 나가겠다는 거요?』

『부당해고에 대해서 노동청에 고발하겠소.』

『마음대로 하시오.』

전 같으면 실제 부당해고라고 해서 고발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IMF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많은 기업체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해고를 했고, 아무도 고발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폭풍처럼 경제계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홍 차장의 저항은 그 폭풍에 맞서서 싸우는 고독한 전사처럼 보였다.

『나를 자른 이유나 좀 압시다. 내가 뭘 잘못했지요?』

『잘못한 것 없소. 이유도 없소.』

『그럼 뭐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그와 더 이상 말하기 싫어서 사장실을 나왔다. 사장실에 혼자 남은 그는 무엇인가를 집어던졌다. 놀란 비서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홍 차장과 문 과장의 술주정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더러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더이상 얼굴을 대하지 않았다.

서른두명의 직원을 퇴출시키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점심 무렵에 나는 연구실의 고참이었던 함 과장을 만났다. 거래처 사람을 만나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나는 옆에 있는 건물의 지하실 이발소에 들렀다. 머리도 깎을 겸 잠깐 쉬기 위해서였다. 그 지하실의 이발소는 안마하는 종업원들이 사타구니를 만지지 않고 제대로 안마를 해주는 곳이었다.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 한 옆에 조그만 휴식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함 과장을 만났다. 그는 가지고 나온 도시락을 먹은 다음에 졸음이 왔든지 그곳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잠결에 실눈을 뜨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매우 당황하였다. 당황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함 과장, 여기서 뭐합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차 한 잔 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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