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주전산기사업 위기

올해 사상최대 호황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에 들떠 있던 주전산기4사가 지난 23일 조달청의 올 주전산기 입찰공고 내용이 알려지자 『이것은 주전산기사업을 포기하라는 메시지와 같다』며 조달청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실제 주전산기시장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 의해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상황에서 조달청이 입찰참가 자격을 완전히 개방한 것은 이제 행정정보화사업을 주전산기만으로 끌고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전산기업체들은 『이대로 사업을 포기할 경우 정부나 업계가 중대형 시스템의 국산화를 위해 투자한 막대한 자금을 고스란히 날리는 것이며, 또 이미 주전산기가 대부분 도입된 지방자치단체에 이기종이 도입될 경우 행정정보화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전산기4사는 조달청의 입찰공고 내용이 발표되자 조달청의 방식대로 입찰이 진행될 경우 주전산기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4사 공동으로 이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전산기업체들이 조달청의 이번 공고안 내용 중 가장 반발하고 있는 조항은 입찰 참가자격이다.

공고안에는 입찰 참가자격이 「국내외에서 생산·제조된 물품을 공급하는 자」로 돼있다. 이 안대로라면 기본 자격조건인 3년간 75억원 상당의 유닉스나 NT시스템을 공급한 실적이 있는 업체들은 누구나 입찰에 참가할 수 있다. 즉 외국 컴퓨터 생산업체는 물론 이들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납품하고 있는 딜러나 SI업체 등도 입찰자격을 획득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에 컴퓨터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올해 최소 350억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지방자치단체 수요를 잡기 위해 이들 업체가 대거 입찰에 참가할 것은 분명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달청은 적격심사에 의한 최저가낙찰제를 도입해 자격이 없는 업체들을 추려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입찰 자격조건을 충족시킨 유통업체나 SI업체들을 적격심사에서 떨어뜨릴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게 주전산기업체들의 주장이다.

결국 조달청의 방식대로라면 주전산기업체들은 컴퓨터 딜러나 SI업체, 외국 컴퓨터업체 등과 똑같은 위치에서 입찰에 참가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주전산기만으로 구축돼온 행정정보화시장에서 이기종이 대거 도입될 경우 과연 행정정보화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번 조달청의 공고안에는 주전산기를 행정전산망용 PC입찰과 마찬가지로 1분류와 2분류로 구분해 각각 공급업체를 선정토록 돼있어 올해만도 지역별로 서로 다른 기종이 지방자치단체에 들어가게 된다.

즉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이나 이기종간 호환문제는 물론 주전산기용으로 개발된 업무용 소프트웨어들이 제대로 운용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주전산기업체 외에 타 업체들이 선정됐을 경우 과연 정부의 계획대로 올 6월까지 전국 232개 지방자치단체에 시스템을 도입, 설치할 수 있겠는가 하는 납품문제뿐 아니라 기존 시스템에 대한 유지보수 등 여러가지 문제가 다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달청측은 이같은 주전산기업체들의 주장에 대해 시장을 독식하기 위한 주전산기업체의 반발로 해석하고 당초 계획안대로 입찰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전산기4사가 그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입찰을 유찰시키는 방법 등으로 가격을 비싸게 받아왔으며 지역별로 나눠먹기식으로 사업을 해오는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돼 입찰자격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또 주전산기업체 일부는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생산하기보다는 외부로부터 OEM으로 공급받아 단순히 납품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전산기4사에 유리하도록 입찰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주전산기업체들이 주장하는 호환문제도 납품업체에 시스템을 주전산기 규격에 맞추도록 했기 때문에 커다란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달청이 입찰방법을 개정한 것은 주전산기사업을 보호하는 데 따른 이득보다는 시장 자체를 완전 개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욱 컸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형 컴퓨터시스템 관련 기반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와 주전산기4사에 의해 지난 10년 이상 추진돼온 사업이라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크다. 당초 국산 중대형 기술개발 축적과 관련산업 보호 차원에서 종래 해오던 방식대로 주전산기 공급업체로만 한정하는 방법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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