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4분기부터 공급물량 부족으로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던 국내 고용량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시세가 지난달 중순 이후 그레이 제품의 대량 유입으로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13일 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 등지의 하드디스크 유통업체들에 따르면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13GB급 이상 대용량 HDD 시세는 펜티엄Ⅲ 인터넷PC 출시와 함께 전반적으로 PC 경기가 살아나면서 강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지난달 중순부터 그레이 제품이 대량 유입, 싼 값에 판매되면서 가격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해 지난주 대부분의 HDD 가격이 1GB당 1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초 13GB 이상의 대용량 제품의 경우 1GB당 1만3000원을 호가하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0% 이상 떨어진 것이다.
이는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하드디스크 제조업체들의 공급물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어서 일반 소비자들은 물론 유통업계 관계자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이 HDD 가격이 하락해 저가경쟁으로 이어질 경우 자칫 시장질서 문란과 AS부실 등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달 초 18만원을 호가하던 퀀텀과 맥스터의 15GB급 하드디스크는 이달들어 시중의 딜러 가격이 15만원대로 떨어졌으며 웨스턴디지털 동급제품도 15만5000∼15만8000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17GB급과 20GB급도 지난달 초에 비해 5만원 가량 내렸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HDD 공급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의 대리점이 아닌 일반 유통업자가 해외의 그레이 시장으로부터 값 싼 물건을 대량으로 들여오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유통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용산 하드디스크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기업인 K사가 매출을 늘리기 위해 해외 그레이 시장 제품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이를 현금화하기 위해 원가수준으로 시장에 다시 공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제품은 딜러들 사이에서 공식 대리점의 정품보다 3000∼5000원 싸게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특정 브랜드의 그레이 제품이 하루에도 적게는 3000개에서 많게는 5000개까지 거래될 정도로 물량이 늘어나면서 정품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으며 덩달아 다른 브랜드의 가격도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공식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해외의 그레이 시장에서 유입된 제품은 국내 지사나 대리점들이 AS를 해주지 않아 구입 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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