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디지털경제부장 yjlee@etnews.co.kr
가끔 기자들의 기사에는 인용문구를 제시하면서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취재원 보호다. 사실 기자의 취재원 보호는 그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인용문구가 「업계관계자」 「증시전문가」 등으로 송고된 기사를 손도 못대고 넘겨야 할 때 착잡함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증권기사는 더하다. 특정 종목이 상승무드론이거나 지나간 주가에 대한 분석기사들은 거의 대부분 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확한 출처를 밝힌다. 그러나 특정 종목의 주가가 비관적이면 기사의 출처는 「OO관계자」 정도로 얼버무린다.
기자의 설명은 이렇다. 만약 증권분석가 중 어느 누구라도 특정 종목에 대해 「NO」라는 예측분석을 내놓으면 이튿날부터 본연의 업무를 제쳐놓고 여기저기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매체도 「추천종목」은 있어도 「낙천종목」은 없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증권면을 맡은 지 이제 겨우 3개월도 채 안된 필자도 주위에서 『오늘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오늘은 어떤 종목이 오를 것 같은가』 등등의 질문을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대단히 어렵다. 그 결과가 틀릴 수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나중에 나타나는 그 사람의 반응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 증시의 보이지 않는 풍토가 깔린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코스닥시장에서 나타나는 「황제주」에 대해 정확하게 「NO」라고 꼬집어 말해온 증권전문가나 매체가 없는 것을 보면 이들(전문가, 매체 등)이 그만큼 현재의 풍토에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여론이 비등해지니까 정부가 나서고 있다. 그동안은 금감원·재경부·중진공 등에서 「코스닥시장 건전성 강화」라는 요지의 간접화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16일에는 청와대에서 「코스닥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단호한 의지와 함께 오늘 「코스닥 과열 진정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17일 코스닥시장은 장 마감무렵까지 20포인트 이상 하락하면서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칼자루의 힘이 시장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부를 또 다시 불신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코스닥 거품론에 대해 시장경제적 관점에서 밀도 있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최근 일련의 과정을 짚어본 것이다. 지금 코스닥시장이 이지경에 이른 것은 『국내외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하는 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장의 시각에 동의한다.
올들어 몇차례씩 나타난 코스닥시장의 「묻지마 투자」는 궁극적으로 산업구조 변혁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 첫번째 생각이다. 공장굴뚝형 산업에서 지식정보형 산업으로 전이하는 과정에서 정보통신망과 인터넷망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장악하는 기업이 앞으로의 시장경쟁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우리에게는 너무 일찍, 그리고 빠르게 다가옴으로써 소화하기가 버거울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거품으로 지목되는 종목은 막연하게나마 앞으로 지식과 정보를 장악하는 대열에 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몰라 효과(Don‘t Know Effect)」 「스몰캡 효과(Small-cap Effect)」, 「한풀이 효과(Sorrow Effect)」 「사이버거래 효과」 등이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시장 패러다임에 의한 코스닥 열풍은 더욱 존중돼야 한다. 미국 나스닥시장의 코스닥시장 견인효과는 더욱 국제화된 시각으로 코스닥 열풍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식시장의 활황이 없었다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속에서 무슨 수로 대기업들이 부채비율 200%를 맞출 수 있겠으며 기본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형 벤처기업들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큰 돈을 조달할 수 있었겠는가를 되새겨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놀이 전문가들인 사채군단이 코스닥을 뒤흔들 경우 아직도 금융경제 자체가 미성숙한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걷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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