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한쪽 간이휴게소가 있는 곳에 교통경찰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교통경찰 두 명이 나와 서서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 중에 한 명은 속도건을 겨누고 있었다. 속도건을 겨눈 자가 무슨 신호를 보내자 서 있던 경찰이 팔을 추켜들어 달리고 있는 대사관 차를 겨냥했다. 마치 점을 찍듯이 찍으면서 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갔다.
『이럴 경우 36계입니까?』
나의 말에 그가 물었다.
『36이 무엇입니까?』
『뺑소니친다는 한국 은어입니다.』
그는 빙긋 웃었다.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니 따라오지 않았다. 우리는 유성쪽으로 빠져서 그곳의 호텔로 들어가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의 철저한 보안의식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호텔 식당에 감청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주위에 있는 사람 가운데 그럴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일 만큼 구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감청에 대해서 두 가지를 개발하여 실용단계에 있었는데, 그것은 원거리 음파 탐지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원거리 일술 영상시스템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레이더로 음파를 탐지하여 대화를 재생하는 것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촬영해서 그것을 컴퓨터에 넣어 입술의 움직임을 유추하여 언어를 해독해내는 일이었다. 입술의 움직임으로 대화를 읽어내는 일은 수화(手話)가 아닌 구화(口話)를 사용하는 농아들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을 주도했던 CIA 부국장 헤밍웨이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그렇게 당할 것이 염려되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친 노이로제라고 충고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유성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온천욕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호텔에 있는 사우나탕에 들어가 그와 함께 목욕을 하였다. 함께 발가벗고 들어갔을 때 보니 그의 가슴털이 무성했다. 약간 붉은 색을 내는 가슴털은 마치 울창한 숲을 연상시켰다. 쑥 냄새가 무성한 한증탕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벽에 TV수상기가 켜 있었다. 한증탕의 수상기는 보통 영화를 보여주었으나, 그때는 정규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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