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69);자전거 비행기

 1949년, 영국의 기업가 헨리 크레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크레머 상」을 제정하고 수상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는 상과 함께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상의 수상자는 무려 28년이 지난 77년에야 나왔다.

 크레머 상의 수상자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인간의 힘만으로 나는 최초의 비행기」였다. 구체적인 조건은 「이륙한 뒤에 서로 800m 떨어져 있는 두 개의 탑을 8자 모양을 그리며 돌아야 하고, 또한 이륙 시와 착륙 시에 3m 높이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것.

 크레머 상의 수상자인 폴 매크리디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엔지니어이자 글라이더 비행가였는데 그는 동체 길이가 9m에, 날개는 29m인 인력 비행기를 만들었다. 「고사머 콘도르」라고 명명된 이 비행기는 놀랍게도 무게가 32㎏밖에 나가지 않았다. 「고사머(Gossamer)」는 「공중에 뜬 가느다란 거미줄」이란 뜻이다.

 고사머 콘도르의 동체는 피아노줄로 연결된 알루미늄 관이었으며 그밖에도 발사나무나 마분지, 발포 플라스틱 등이 재료로 이용되었다. 날개 길이가 30m나 되었던 이유는 비행기 속도가 시속 15㎞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양력을 극대화해 계속 공중에 떠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77년 8월 23일, 고사머 콘도르는 캘리포니아주 컨카운티 공항의 활주로를 9m 정도 달려가다가 이륙에 성공했다.

 조종사이자 엔진을 맡은 사람은 24세의 사이클 및 행글라이더 애호가인 브라이언 앨런. 그는 크레머가 정해놓은 코스를 7분 23초만에 거뜬히 주파해 마침내 고사머 콘도르에게 크레머 상을 안겨주었다.

 다음에 매크리디는 더 과감한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길이 37㎞의 영불해협을 인력 비행기로 횡단해 보리라 결심한 것이다. 그는 다시 새로운 비행기 「고사머 알바트로스」 제작에 착수했으며 탄소섬유와 폴리에스터 필름 등 첨단 재료를 대거 채택했다.

 79년 6월 12일, 고사머 알바트로스는 3시간 여의 비행 끝에 영불해협 횡단에 성공했다. 고사머 콘도르를 조종했던 앨런이 이번에도 조종사-엔진을 맡았다.

 10여년 뒤인 88년에는 더 놀라운 인력 비행기가 등장했다. 미국 MIT대학과 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36명에 이르는 과학자, 엔지니어, 기상학자들의 도움을 받고 100만 달러의 경비를 투자하여 인력비행기 「다이달로스」를 만들었다.

 다이달로스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자신의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깃털과 밀랍으로 몸에 날개를 달아 크레타섬에 있는 미노스왕의 미로를 탈출했다고 한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날개가 녹아서 추락해 죽어버리지만,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섬 북쪽 120㎞에 위치한 산토리니섬까지 날아가는 데 성공한다.

 인력비행기 다이달로스는 바로 이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려 한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탄소섬유와 케블라라는 특수 합성섬유로 동체를 만들어 날개길이가 34m에 달하는데도 중량은 32㎏에 지나지 않았다. 케블라는 강철보다 5배나 강하면서도 유리섬유보다 가볍다.

 조종사는 그리스의 사이클 대회에서 14번이나 우승한 경력이 있는 30세의 카넬로풀로스. 그는 몇달 동안 훈련하면서 몸을 만든 뒤 기상상태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가 88년 4월 23일에 이륙했다.

 다이달로스는 평균 시속 30㎞, 평균 고도 6m로 바다 위를 4시간 가량 날아가서 마침내 산토리니섬에 도달했으나 해변을 불과 몇 미터 앞두고 맞바람을 맞으면서 그만 날개와 꼬리가 부러져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종사 카넬로풀로스는 마라톤 완주를 두 번 하는 것과 맞먹는 체력을 소모하고도 조종석을 깨고 나와 해변까지 헤엄쳐갔다. 어쨌거나 그리스 신화는 20세기에 와서 사실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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