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권전산에는 후배들의 눈총을 받는 서른일곱의 노총각 팀장이 있다. 밤 1시, 걸핏하면 새벽 3시까지 일을 해 부하직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워커홀릭 이상범씨(37).
『다행히 요즘엔 집에서 바가지 긁히는 유부남 사정 몰라준다는 후배들의 원망을 듣지 않게 됐어요. 올해 들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키다 보니 하나에만 몰입할 수 없거든요. 퇴근시간이 오히려 빨라졌죠.』
이상범씨의 명함엔 그냥 팀장이라고 써있다. 전산기술연구소 신기술연구팀장으로 차세대 증권시스템 개발 방향을 연구하는가 하면 전자인증사업부 시스템팀장으로 인증기관을 구축하고 거기다 모의투자시스템까지 운영하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일복이 터졌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요즘 증권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전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요. 신사업이 많다 보니 이것저것 맡아하게 됐습니다.』
이상범씨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81학번으로 지난 88년 증권전산에 입사한 후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밟은 열성파다. 그는 지금까지 증권전산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 기획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전국 증권사 지점들을 하나로 묶는 증권망, 매매체결과 공동온라인 시스템을 개발하는 「시스템2000 프로젝트」에도 참가했다.
요즘 이상범씨가 가장 신경을 쓰는 업무는 차세대 시스템이다. 지난해 만든 사이버증권 프로토타입을 보완해 「원투원(One to One)」 마케팅이 가능한 미래지향적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한 화면에서 내 은행잔액이 얼마인지, 주식은 얼마나 올랐는지, 보험료 낼 때가 됐는지 한꺼번에 점검할 수 있는 금융 에이전트 프로그램 같은 거죠. 거기다 박찬호의 경기부터 이승엽이 홈런을 몇 개 쳤는지, 박세리의 우승상금이 얼마인지 스포츠정보도 검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에게 가장 재미있는 업무는 인터넷 모의투자게임 운영이다. 지난해 전자서명법의 확정이 지연되면서 두달 정도 업무의 공백이 생기자 인증기관을 구축하던 직원들을 중심으로 모의투자게임 시스템을 개발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시간을 많이 뺏길 줄은 예상도 못했다. 진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모의게임이니 마니아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그런데 예상외로 호응이 폭발적이었다.
투자론을 강의하는 대학교수가 증권전산 모의투자로 실습을 시킬 테니 수강생들의 성적표를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해오기도 했다.
이렇게 바쁜 일과에도 불구하고 이상범씨는 틈틈이 테니스, 골프, 수영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고 지루한 회의는 농담으로 풀어갈 줄 아는 분위기 메이커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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