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부처이기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부처간 주도권 싸움으로 기술정책의 난맥상이 재연되고 있다.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 등 정부 관련부처가 제각각 추진하고 있는 기술이전 전담기구의 설치 문제는 부처이기주의와 주도권 싸움의 전형처럼 비춰지고 있다. 정부 부처 간에 충분한 사전협의나 조율 없이 아전인수격으로 기술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이들 부처의 기술이전기구 설치안을 보면 과기부는 「기술이전 및 실용화 촉진에 관한 법률」안에 「신기술실용화사업단」의 설치 근거를 마련해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산자부도 과기부에 맞서 가칭 「기술이전촉진법」안에 산업기술정보원을 국가기술이전센터로 확대 개편하는 한편 한국기술평가원을 신설해 이전기술에 대한 상업화 가능성과 기술에 대한 평가시스템을 만든다는 방안이지만 한국기술평가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이미 과기부 산하에 설치돼 있는 형편이다.
정통부 역시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부설기관으로 「정보통신기술이전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나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이미 기술이전 전담팀을 설치·운영중에 있어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들 부처가 기술이전센터 설치 명목으로 내걸고 있는 개발 신기술의 상용화 촉진만을 놓고 본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사안이다.
문제는 부처간 업무중복이나 예산낭비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특히 신설될 기술이전 추진기관 간에는 물론 이미 연구성과물의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중기청, 전자통신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과기원 신기술창업지원단, 각 지자체 중소기업 지원전담기구와도 마찰이 일 게 뻔하다.
이처럼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술이전기구의 성격이나 역할이 유사한데도 독립기구 설립을 고집하는 것은 취지의 적합성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없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연구종사자들은 물론 기업들에도 혼란을 가중시켜 득보다 실이 훨씬 클 뿐이다.
관련부처들이 앞다퉈 출연연구기관 등 연구계의 개발기술 이전을 촉진하기 위한 관련법을 제정하거나 개별적으로 기술이전 전담기구를 설치한다면 출연연이나 기업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국민이 뭐라 하겠는가. 정부 및 산하기관 간의 사분오열된 업무행태를 어떻게 보겠는가.
국민의 정부 들어 출연연의 상위기관이 부처에서 총리실로 바뀐 것도 정부 부처들이 그동안 보여온 이기주의적·파행적 업무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기술전쟁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음에 비추어 출연연의 연구개발성과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 신속하게 이전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발상으로는 결코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정부 부처에서는 이같은 부정적인 상황을 인식해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기술이전기구의 설립안을 백지화하고 기술이전의 주체인 출연기관과 소속 연구원의 의견을 수렴해 개발성과가 제대로 기업에 이전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기술이전센터가 출연기관의 개발의욕과 연구원들의 창의력을 꺾는 쪽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출연연들이 구조조정에 시달리면서 연구원들의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다.
기술이전기구를 추진하는 관련부처들은 이 기구를 설립하기 전에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당·정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 절차적 대안을 마련하는 게 순리다. 그 결과로 「기술이전 및 실용화촉진법(안)」을 공동여당 의원입법 형태로 정기국회에 상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앞으론 이같은 중구난방식 정책을 각 부처가 별도로 추진해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이 없도록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정책 협의에 보다 충실해주기 바란다. 정부 각 부처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이런 난맥상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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