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8월 12일 뉴욕. 세계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거대기업 IBM은 책상 위에 올려 놓을 수 있는 컴퓨터 하나를 발표한다. 이 컴퓨터가 바로 「퍼스널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된 개인용 컴퓨터 「IBM PC 5150」. PC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년이 흐른 지금 PC는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이란 찬사 속에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메인프레임 전성기였고 그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IBM이 PC를 만들게 된 것은 풋내기였던 애플컴퓨터의 급부상에 자극받았기 때문. 76년 스티브 잡스 등이 만든 8비트 「애플」이 돌풍을 일으키자, IBM은 80년 비밀리에 1년 기한의 PC개발 프로젝트 「체스(CHESS)」를 가동한다. 이 프로젝트의 팀장이 바로 오늘날 PC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필 에스트리지.
하지만 IBM의 프로젝트 목표는 어디까지나 애플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었으므로 PC를 직접 개발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 시장에 나와 있는 마이크로형 부품들을 조합할 수 있는 표준 아키텍처 규격을 제정하는 것이 체스팀의 임무였다. 주요 부품으로 인텔의 8086 마이크로프로세서, 탠던의 디스크드라이브, 대만산 모니터 등이 채택됐다. 소프트웨어인 디스크 운용체계(DOS)는 우여곡절 끝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따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최초의 16비트 PC가 「IBM PC 5150」이다. IBM이 직접 제작한 것은 키보드뿐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IBM은 단번에 애플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IBM PC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 설계방식에 있다. 표준화된 부품들을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누구든지 PC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82년 컴팩을 시작으로 수많은 IBM 호환PC 업체들이 등장했다. 핵심요소를 공급하는 MS와 인텔은 IBM에 공급하는 것과 똑같은 DOS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호환업체들에도 제공했다.
호환업체들의 가세로 PC산업은 IBM도 놀랄 정도로 급성장한다. 호환업체들은 성능차가 없는 호환PC를 IBM보다 30%나 낮은 가격으로 사용자들을 공략했다. 80년대 중반 호환업체들은 어느 정도 기업규모를 갖춘 것만 세계적으로 3000개를 넘어섰고 IBM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낮아졌다.
호환PC의 선두주자였던 컴팩은 급기야 86년 8월 IBM보다 먼저 386 PC를 발표해버렸다. IBM이 호환업체들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당연했다. 87년 4월 IBM은 호환업체들의 수족을 일거에 묶어버린다는 계획아래 호환이 불가능한 새 아키텍처 기반의 「PS/2」를 발표한다. MS는 여기까지 IBM을 믿고 PS/2용 운용체계 「OS/2」를 함께 개발한다.
그러나 이미 커질대로 커진 호환업체들은 IBM의 의도를 비웃기라도 한듯 컴팩을 중심으로 기존 개방형 아키텍처를 사수키로 결의한다. 반면 지원 가능한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가 태부족이던 PS/2의 판매는 부진에 부진을 거듭했다.
90년대 들어서자, 예고된 수순대로 IBM은 몰락해갔고 PC산업은 패러다임의 변환기를 맞았다. IBM과의 힘겨루기에서 호환PC업체들의 승리가 굳어지자, 91년 MS는 마침내 「OS/2 2.0」의 개발 중단을 선언하며 IBM과 10년 동안의 밀월기간을 끝냈다. 이듬해 MS는 「윈도3.1」를 발표했고, 93년 인텔은 64비트 펜티엄 프로세서로 화답했다. 윈도와 펜티엄(인텔)의 결합은 사무자동화 수준에 머물던 PC의 활용폭을 사실상 무한대로 넓혔다. 윈텔시대가 본격 개막된 것이다.
개막은 MS와 인텔이 81년 당시 뜻하지 않게 잡았던 행운, 거기에 만족하지 않은 끊임없는 기술개발 의지, 그리고 정확한 판단력에 기반한 의사결정력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윈도98」과 펜티엄Ⅲ까지 발표된 99년 현재 윈텔의 PC산업 지배율은 90%에 육박했고 마음만 먹으면 소비자를 볼모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됐다. PC의 운명이나 미래는 이제 윈텔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향후 10년 아니, 5년 후 PC의 모습을 예상해 보려면 기술흐름보다는 MS와 인텔의 주식시세와 같은 기업동향을 먼저 파악해 봐야만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독과점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PC시장이 포화조짐을 보이고 PC업체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는 것은 무엇보다 윈텔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이뤄져온 윈텔 공조체제에도 일부 균열은 감지된다. 예컨대 「윈도2000」이 펜티엄 시리즈와 경쟁관계인 「알파」칩을 파트너로 선택했다든가, 반대로 펜티엄이 「윈도2000」 외에 리눅스와 「BeOS」 등을 또다른 파트너로 지목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경쟁업체들의 도전도 예전과 달리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 결과는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래서 정공법보다는 의외의 분야에서 윈텔의 약점을 잡아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력한 윈텔의 적은 그들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경쟁의 미학에 둔감해지고 있는 그들의 나태함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김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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