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합 반도체사의 청사진

 현대전자가 LG반도체 주식 양수도 대금을 LG 측에 치름으로써 경영권을 정식으로 인수, 우여곡절 끝에 양사는 통합됐다. 미국 공정거래위원회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양사 통합에 대해 국제 상거래 질서에 별 문제가 없다며 승인한 상태여서 특단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완전 통합을 위한 요식적인 절차 정도만 남겨두고 있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산업 구조조정 작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반도체 분야의 과잉·중복 투자를 줄이고 지나친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이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양사의 통합은 그것을 합의하는 데서부터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양사를 통합함으로써 오히려 한국이 세계 반도체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점, 또 상이한 양사의 제품 특성과 생산구조로 볼 때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등 부정적인 시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같은 우려는 1년 가까운 세월의 뒤켠으로 묻어둔 채 이제는 통합사의 출범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지난해 세계 D램 분야에서 2위를 차지한 현대전자와 5위인 LG반도체가 통합함으로써 세계 1위였던 삼성전자와 1위를 다툴 정도의 거대한 반도체업체로 새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반도체 수출 규모가 매우 크고 또 그것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점을 감안할 때 현대 반도체 통합사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반도체 통합사가 하루빨리 1 더하기 1이 2가 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현대는 양수도 대금을 치르면서 양사의 통합으로 생산설비의 중복투자 억제와 연구개발 및 판매관리 비용절감 효과 등으로 향후 약 60억 달러의 비용절감이 가능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현대전자 김영환 사장은 최근 LG반도체 청주 및 구미 공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만나 경영방침을 밝힌 데 이어 통합 반도체 회사의 임원 인사를 단행, 체제 정비에 나서고 있다. 현대는 또 오는 26일로 예정된 주총을 통해 남은 절차를 처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러한 집안정리도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은 현대가 통합하면서부터 좀더 체계적이고 기민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즉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명성에 걸맞은 「청사진」을 보여줬어야 했다.

 이 청사진에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온 양사의 통합에 따라 예상되는 어려운 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더 나아가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담아 최소한 현대가 경영권을 인수하는 시점에서는 명쾌하게 보여줬어야 했다.

 그것이 양사의 통합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회사로 성장한 현대전자에 거는 국민의 기대에 보답하는 길이며, 그동안 쌓인 우려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혹시라도 긴장이 이완된 임직원들이 있다면 그들을 단속하고 또 그동안 이탈되었던 거래처를 추스려 되돌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크게 차이가 나는 양사의 기업문화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융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통합회사는 그 구성원들이 처음에는 어디서 시작했든 간에 상관없이 이제부터 다시 출발점에 섰다는 의식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또 대외적으로는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도 중요하다.

 물론 그동안의 인수협상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돌출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이미 오래 전에 결정된 일을 가지고 그동안 통합 반도체 회사의 비전과 경영전략을 담은 청사진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현대가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서 생산능력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규모에 걸맞은 기획·홍보력 제고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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