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를 이끄는 "신지식인"

 다가올 밀레니엄은 어떤 지식인을 요구할까. 정보사회는 산업사회와는 밑그림부터가 다르다. 자연히 21세기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모범답안도 지금까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주장하는 다양한 지식이론을 바탕으로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인상(知識人像)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골드칼라」는 정보사회형 지식인을 가리키는 키워드 중 하나다. 골드칼라(gold collar)란 흰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보통 직장인인 화이트칼라와는 구분되는 개념.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카네기 멜론 대학의 로버트 켈리 교수다. 그는 85년 출판한 「골드칼라 노동자」라는 책에서 산업사회형 화이트칼라의 몰락과 정보사회형 골드칼라의 부상을 예고했다.

 골드칼라란 황금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별칭. 비슷한 의미에서 「플래티넘(platinum) 칼라」 또는 「슈퍼휴먼(superhuman)」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주어진 일에만 충실한 화이트칼라와는 달리 무엇이 자신에게 중요한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새로운 업무를 창출해 낸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를 클릭하면 돈을 준다는 아이디어로 코스닥시장에 벤처주식 바람을 일으킨 김진호 사장이나 사오정 전화기를 개발한 YTC텔레콤 지영천 사장, SF영화 용가리로 신지식인 1호가 된 심형래 사장 같은 인물이 골드칼라라고 할 수 있다.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라는 말도 정보사회형 지식인과 동의어.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 교수는 지난 93년 출간된 「탈자본주의사회」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 이 책에서 드러커 교수는 지식이 자본이나 노동처럼 중요 생산수단이라고 전제하고, 지식근로자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문교육을 마친 지식인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학식과 상관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고 있으면 지식근로자라는 것. 이들은 지식이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다가올 지식사회는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시대」가 될 것이라는 게 드러커의 전망이다.

 암묵지와 형식지 이론도 미래형 지식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지식이론의 대가인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호쿠리쿠대 교수는 지식을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그에 따르면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란 학습과 체험을 통해 개인에게 습득되지만 언어나 문자를 통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반대로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란 문서나 매뉴얼처럼 외부로 표출돼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교과서, DB, 비디오, 신문처럼 어떤 형태로든 눈에 보인다. 노나카 교수에 의하면 지식창조는 형식지와 암묵지의 순환 프로세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요즘 이화여대 김효근 교수의 신지식인론이 정보사회 지식인상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교수는 지식을 사물지, 사실지, 방법지 세 가지로 나눈다. 사물지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아는 것, 사실지는 사물의 특성과 상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물지로 빨간색과 파란색을 구별한다면 「물은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졌다」와 같은 명제를 아는 것은 사실지다. 그런가 하면 방법지는 인간이 욕구를 느끼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이를 달성할 방법에 관한 지식이다. 김 교수는 신지식인이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방법지를 가지고 자아를 실현하며 가치를 창조하는 인류, 즉 호모날리지언(Homo­Knowledgian)이라고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심포지엄 발표집 「지식경영과 한국의 미래」를 통해 다양한 지식인론과 함께 지식인이 지성적 지식인, 운동가적 지식인, 전문적 지식인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처럼 세상과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우주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지성적 지식인(intellectual)이라면, 1860년대 말 농민을 계몽하고자 브나로드운동을 전개했던 러시아의 지식인들처럼 정치이념에 따라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운동가적 지식인(intelligentsia)이다. 보통 지식인이라고 하면 전문적 지식인(intelligent)을 말하는데 이들은 현실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사회 주도세력으로 부상한 관료 또는 전문가들을 가리킨다.

 이같은 지식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 과연 정보사회의 지식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세계적인 경영자, 특히 정보통신분야 CEO들의 학창시절엔 공통점이 있다. CNET의 창업자 할시 마이너는 10대를 보낸 버지니아의 소도시에서 또래 친구들을 고용해 페인트칠 회사를 운영했다.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은 대학기숙사에서 컴퓨터 부품을 조립해 친구들에게 팔았다. 그리고 AOL의 스티브 케이스 회장은 10세 때 형과 함께 관광객들에게 레모네이드를 파는 회사를 설립했고 11살이 되자 잡화상을 열었다. 스무 살 무렵엔 미용체인 「프록터&갬블」에서 손님들 머리를 감기거나 피자헛에서 피자 토핑을 얹는 일을 하면서 소비자들의 심리를 연구했다. 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배운 형식지와 현장경험을 통해 터득한 암묵지를 결합시켰고 그러한 지식창조의 프로세스가 훗날 실리콘밸리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낸 밑거름이 됐다.

 뛰어난 네트워킹 또한 지식인의 조건이다. 첨단기술로 정보나 지식에 접근하는 정보네트워킹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인적 네트워킹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공유하는 네트워킹이야말로 정보시대 지식인의 기본소양이다. 이와 관련, IBS컨설팅그룹 윤은기 소장은 「호전적이고 저돌적이며 혼자서만 잘 하려는 상어형 아이들보다 창의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고래형이 네트워킹에 성공해 미래형 신인재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식인의 전형이 스페셜리스트냐, 제너럴리스트냐는 단언하기 힘든 문제다. 일부 학자들은 산업사회의 교육제도가 모든 면에서 B학점 이상인 사람을 높이 평가해 왔다면 앞으로는 어느 한 분야만 깊이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가 성공확률이 높다고 예언한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식창조를 위해서는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한 분야에 대해서만 정통한 I자형 인재로는 부족하다는 것. 한 분야를 잘 알면서 관련분야까지 폭넓은 지식을 갖춘 T자형이나 두 가지 분야 이상의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A자형 혹은 π자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효근 교수는 최근 정부의 신지식인 운동이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당신도 신지식인」이라는 식으로 단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가 하면, 돈을 벌면 곧 지식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까지 있다고 말한다. 신지식인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학계와 교육계, 그리고 경영일선에서 지식과 지식인에 대해 좀더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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