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1년 발표된 인텔 「4004」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회로소자 하나의 크기(선폭)는 10㎛. 이로부터 28년이 지나 발표된 「펜티엄Ⅲ」의 회로소자는 40분의 1인 0.25㎛로 줄었고 회로 집적도는 무려 4000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18∼24개월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배로 순증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은 「예외없는 법칙」처럼 인식돼 왔다. 그런데 앞으로도 과연 선폭은 무한정 줄어들고 집적도는 무한대로 증가할 수 있는가.
전문가들은 예상대로 2000년대 중반 회로소자의 선폭이 0.04㎛에 이르면 집적도의 증가는 이론상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소자들이 물리적으로 더이상 자성을 보유하지 못하는 이른바 초상자성한계(Super Paragmagnetic Limit)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 D램을 예로 들어보면 16Gb 이상의 제품 개발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모든 전자·정보통신 기술, 나아가서는 전자·정보통신에 의존하는 모든 산업·사회 발전 현상은 정체기를 맞게 될 것인가.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바로 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두된 것이 나노기술(Nano Technology)이다.
나노기술은 한마디로 원자(原子)의 세계를 다루는 초미세 기술이다. 원자의 제어를 통해 초상자성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연구결과를 기억저장매체에 적용, 상상을 초월하는 반도체 집적도를 실현한다는 것이 그 목표다. 이렇게 되면 200평 크기의 슈퍼컴퓨터가 데스크톱 크기로 작아지는 것은 가장 흔한 예가 될 것이다.
나노의 뜻은 10-9를 가리키는 미세단위. 1나노는 10억분의 1m,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한다. 원자 하나의 크기가 대략 0.2나노미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노기술의 범위가 얼마나 미세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나노기술 이론이 대두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5년 전 안팎이다. 80년대 초반 원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조작할 수 있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원자힘현미경(AFM) 등이 발명되면서 나노기술에 대한 연구는 꿈이 아닌 현실세계로 진입했다. 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기억소자를 집적하고자 하는 산업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9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화됐다.
나노기술은 정보통신, 특히 반도체 집적기술의 물리적 한계가 서서히 다가오면서 이 위기를 극복할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위기극복 차원을 넘어 꿈의 반도체 개발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주요 나노 프로젝트가 모두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1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일본·네덜란드 등이 이 분야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은 기초적 수준이지만 IBM과 같은 기업들은 이미 나노기술에 대한 소정의 연구결과들을 공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는 지난 95년부터 국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기업 차원에서의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대학·연구소에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주관하는 극미세구조기술개발사업단 및 서울대 나노기억매체연구단이 96년과 97년 각각 10년·9년 연구목표의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지난 95년 국가지정 연구센터로 출범한 연세대 초미세표면과학연구센터는 국내 나노기술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많은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서울대 나노기억매체연구단장인 국양 교수(물리학과)는 『반도체 신제품은 보통 5∼6년간의 연구개발 기간이 소요된다』고 전제하고 『그렇다면 2000년 중반에 초상자성한계 극복을 위한 나노기술에 대한 투자는 지금이 적기』라고 지적한다. 학계·연구소는 물론이거니와 기업들에도 나노기술에 대한 투자가 결코 남의 일이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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