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구 앞에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이 일을 보고 나가자 나는 바싹 다가가서 송혜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나를 보면 반가워하겠지. 아니, 반가워한다는 가정은 쓸데없는 상상일지 모른다. 나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서 그 많은 손님 중에 한 명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면, 오빠의 휘하에 있는 사병이라는 점 때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관심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쨌든 좋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만족해야 했다.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오천원과 함께 통장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보내온 돈은 이만원이었지만 은행에 자주 오기 위해 오천원만 입금했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세 번 더 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돈과 함께 통장을 내밀자 여자는 그것을 받아들고 정리했다. 나의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통장에 있는 이름을 보았겠지만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워낙 많은 고객을 상대하는데 나를 기억할 리가 없겠지. 그렇다고 내 얼굴 좀 보세요, 내가 왔거들랑요 라고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맞은편 벽을 보는 척하면서 실제는 그녀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눈썹은 일자로 곱게 그어져 있고, 귀 밑에 발그스름하면서 뽀송뽀송한 솜털이 보였다. 가늘고 긴 목에는 은빛을 내는 실 같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 목걸이는 가늘었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가늘었기 때문에 그녀의 목에 더욱 어울렸고, 무척 품위있는 느낌을 주었다. 여자는 통장정리를 마치고 그것을 나에게 돌려주면서 쳐다보았다.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머, 오빠 부하네예?』
「안녕히 가세요」는 분명히 서울말이었는데, 나를 알아보고 경상도 사투리로 바뀐 것을 듣고 나는 무척 기뻤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남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네, 그렇습니다. 전에 왔었죠. 기억해 줘서 고맙습니다.』
『성함이….』
하고 그녀는 전표를 들고 보면서 말을 이었다.
『최영준씨, 맞네요. 최영준씨네예.』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올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마치 그녀의 입속에 내가 들어가 그 혀 안에서 녹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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