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업체들의 잔치는 끝났는가.」 지난 수년간 성장세를 구가해 오던 컴퓨터업체들의 영업실적에 하나둘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지난달 휴렛패커드(HP)와 델컴퓨터가 발표한 분기실적(98년 10월∼99년 1월)이 월가의 투자가들을 실망시킨 결과 주가급락으로 이어지더니 컴팩도 이번 분기 자사 실적이 당초 예상에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분석가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동안 고도성장의 대명사로 여겨져 오던 델의 실적저하는 향후 저성장 내지는 컴퓨터 경기후퇴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자사 회계연도 4·4분기인 이 기간 동안 델은 전년동기비 49% 늘어난 4억2500만달러의 순익과 38% 증가한 51억7000만달러 매출을 기록,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2년 동안 매출 및 순익에서 55%가 넘는 성장률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것으로, 고속성장이 한계에 달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따라서 분석가들은 델이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HP 역시 자사 회계연도 1·4분기인 이 기간 동안 순익이 전년동기비 3% 늘어난 9억6000만달러에 매출도 119억달러로 1% 증가에 그쳐 분석가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보였다. 물론 이는 지난해 전체 회계연도에서 순익이 5.6% 줄어든 것과 비교할 때 회복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난 93∼97년 동안 기록했던 연평균 46%의 수익증가율은 아득한 과거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달 들어서자마자 마이크론일렉트로닉스와 스리콤이 각각 자사 판매가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며 올 1·4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들 업체의 지표는 지난 6년 동안 미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정보기술(IT) 투자가 한풀 꺾이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리서치업체인 포레스터리서치가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올해 IT투자 증가율은 1% 정도로 지난해 4%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네트워크 구축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었던 통신업체들도 올해 이 분야 투자를 9∼10% 정도만 증액시킬 계획으로, 과거 7년간 연평균 15% 증가율을 보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심지어 이들 통신업체 중에는 올해 투자예산을 줄이는 곳도 있다는 것이 리서치업체들의 지적이다.
리서치업체인 BT알렉스브라운은 벨사우스의 경우 올해 IT투자액이 49억달러로 작년보다 6% 정도 삭감됐다며 결과적으로 올해 기업들의 IT분야 지출증가율은 예년의 절반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월가의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메릴린치의 기술관련 주가는 지난달초에서 이달초까지 한달새 12.7%가 떨어졌다.
특히 네트워크장비를 공급하는 스리콤이 최근 판매가 예상밖의 부진을 보이면서 자사 3·4분기(12∼2월) 수익이 당초 목표의 3분의 2에도 못미칠 것이라고 전하자 주가가 하루만에 10포인트나 빠지는 당혹감을 맛봐야 했다.
반면 현재로선 컴퓨터를 비롯한 하이테크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속단할 순 없다는 의견 또한 강력하다.
식을 줄 모르는 인터넷 열기로 PC와 서버판매가 여전히 호조를 띠는 데다 미국경제 역시 지속적인 상승무드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PC데이터에 의하면 실제로 올들어 첫 6주 동안 소매점을 통한 PC판매는 강세를 유지했으며 또다른 리서치업체인 콘퍼런스보드도 경기 선행지표들이 3개월째 연속 올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 수치와 실업률도 계속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거시경제 측면에서 미국 하이테크산업의 침체를 예고하는 어떠한 징후도 현재로선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내이션뱅크 몽고메리증권의 결론이다.
그러나 미국시장이 이처럼 장밋빛으로 채색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이외의 지역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는 데 업체들은 우려감을 표시한다.
지난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던 유럽 PC시장의 경우 올해는 성장률이 지난해의 절반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데이터퀘스트) 아태 PC시장도 지난해말부터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올 성장률이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엇보다 PC업체들에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끝모를 가격경쟁에 따른 수익률 악화다.
HP는 올해 PC사업이 판매량에서는 14% 정도 늘어나겠지만 금액으로는 5%에도 못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진율을 희생양으로 물량공세를 펴기 때문에 매출액 증가율이 판매량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데이터퀘스트도 올 1·4분기 서버시장에서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 증가하는 반면 금액면에서는 제자리를 맴돌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PC 가격경쟁은 가정시장에서 기업시장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포레스터리서치에 의하면 이 결과 지금까지 950달러 홈PC에 비해 1600달러선을 유지해 왔던 업무용PC 평균가격이 1440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PC업체들의 판매를 떠받쳐 주었던 기업들의 수요가 최근 격감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크기가 줄어든 파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가격을 깎아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는 결국 업체들의 수익률 악화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NT2000 발표지연도 일부 기업들의 네트워크 추가구축을 미루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물론 컴퓨터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먹구름에도 일부업체들은 전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분야에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업체들의 성공은 여전히 업계의 화제다. 시스코시스템스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대표적이며 지난 3년여 동안 불황의 늪에 빠져있던 반도체업체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올해 30%가 넘는 성장률이 기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초부터 컴퓨터업계를 휘감고 있는 스산한 기운을 좀체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며 이 시점에서 업체들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강력히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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