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내 마음의 풍금

 첫사랑은 열병처럼 가슴을 달뜨게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그 추억은 물안개 같은 그리움으로 자리잡는 법이다. 이영재 감독의 데뷔작 「내 마음의 풍금」은 각박한 세상살이를 젖혀두고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린 시절의 해묵은 일기장을 다시 보듯 그리움과 향수를 전하는 영화다.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을 꿈꾸는 총각선생과 나이 많은 여학생의 모습은 화사하거나 수줍은 미소로, 때로는 낄낄거리는 짓궂음으로 관객들을 과거의 풍광 속으로 끌고 들어가 즐겁게 만든다. 여학생 시절 한번쯤은 꿈꿔봄직한 총각선생님과의 사랑얘기도 그러려니와 60년대 산골마을의 살림을 그대로 드러내는 세트나 에피소드들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강원도 산골마을에 사는 17세의 홍연(전도연 분). 그녀는 아직 젖먹이 어린 동생을 업고 등교해야 하는 산리 초등학교의 늦깎이 5학년생이다. 어느날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부임해온 21세의 총각선생 강수하(이병헌 분)와 우연히 마주친 후 자신을 처음으로 아가씨라 불러준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수하에게 홍연은 단지 5학년 담임반의 학생일 뿐이다. 수하는 오히려 같은 날 부임해온 아름다운 연상의 여교사 양은희(이미연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어느 비오는 날 같이 우산을 쓰게 된 것을 계기로 수하는 양 선생에게 서로가 갖고 있는 LP판을 바꿔 듣자는 제안을 하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점차 키워간다. 자신의 팔꿈치를 꼬집은 수하의 장난이 자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홍연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고 그녀의 일기장은 양 선생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찬다.

 그러던 어느날 수하가 양 선생에게 빌려준 가장 아끼는 LP판을 아이들이 박살내고, 뒤이어 양 선생이 정혼자와 함께 유학길에 오르면서 수하는 실연의 아픔에 빠진다. 수하의 아픔과 반대로 아름다운 경쟁자를 물리친 시골소녀는 기쁨에 넘친다. 그러나 학예회를 준비하던 강당에서 불이 나자 이 사건을 계기로 수하는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홍연이 가슴앓이를 시작하면서 일기로 읽혀지는 내레이션은 수줍음과 설레임, 사랑에 대한 당돌함과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나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감흥을 선사한다.

 영화에 드러나는 60년대의 정서는 상당부분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촌스러움과 따뜻함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인 위안으로 다가서는 것은 가슴 저미는 사랑의 열병을 훑고 지나가면서도 희망과 순수함의 코드를 잃지 않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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