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사람은 동아컴퓨터의 공 사장이었고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낸 사람은 공 선생이었다. 공 사장이 점심을 사기로 했다. 나는 최 사장의 권유로 골프장에 나왔지만 사실 시간이 아까웠다. 식사 대접을 사양하고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일방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골프에 대한 즐거움이 있을 수 없었다.
서툴러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섹스와 골프라고 최 사장은 말했지만 나로서는 그 두 가지가 모두 서툴 뿐더러 즐겁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컴퓨터 잡지를 펴들었다. 해가 지면서 까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집 밖에 서 있는 고목나무 가지에 까치집이 있었는데 근래 와서 까치가 자주 울어댔다. 서울 근교이기는 하지만 나무 위의 까치집을 보기는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나무 위에 있는 까치를 올려다 보곤 했다. 까치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혹시 그 까치집이 까치가 살지 않는 빈집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집에 까치가 들어가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잡지의 책장을 넘기다가 눈에 익은 어느 사진에 시선을 멈췄다. 내가 흠모하는 컴퓨터 천재로 또다른 인물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 그리고 게리 킬딜의 모습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사의 공동창업자들이었고 킬딜은 CP/M을 개발한 사람이었다. 또한 빠지지 않고 빌 게이츠의 사진도 나와 있었다. 미국의 컴퓨터시장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점거한 인물을 소개한 부분이었다. 특히 빌 게이츠에 대한 화보와 함께 성장과정이 나와 있었다. 75년에 종업원 3명으로 시작해 78년 현재 13명으로 늘어났다. 첫해 수익은 1만6천달러에 불과했지만 다음해에 2만2천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그 다음해에 38만2천달러를 올렸다. 76년에서 77년까지 한 해 동안 성장률이 6백36%에 이르렀다. 안경을 쓴 갸름한 얼굴을 한 게이츠는 귀염둥이라든지 개구쟁이 인상을 주었으나 상업적인 수완이 대단한 무서운 아이였다.
나는 책을 덮고 벌렁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바로 천장에 있는 흐릿한 전구가 눈을 부시게 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잠시 있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가까운 산비탈 기도원에서 들리는 기도소리에 잠을 깼다. 할렐루야 하고 통성기도하는 소리가 울려 왔다. 깊은 밤에는 그 소리가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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