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피터 드러커 교수의 21세기 "지식사회론"> "지식노동자"

새로운 천년을 목전에 두고 "지식(Konw-ledge)" 열풍이 불고 있다. 21세기에는 자본이 아닌 지식의 흐름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이른바 지식사회가 도래한다고 한다. 이 지식사회를 탈자본주의사회(Post-Capitalist Society)라고 정의한 피터 드러커(Peler F. Drucker) 교수는 현대경영학의 대부이자 사회학의 거두로 일컬어지고 있는 금세기 최고의 석학이다. 드러커 교수가 바로 지식사회 노래의 전도사다. 오늘날 전세계에 불어닥친 지식사회 열풍은 바로 그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드러커 교수의 지식사회론을 총정리해 본다.

<편집자>

 드러커는 자본주의 이후에 도래하는 지식사회에서는 지식이 유일한 생산수단이 되며 자본주의사회의 원동력이었던 전통적인 생산요소, 즉 토지·노동·자본은 이제 경제발전에 오히려 제약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식이 생산성(Productivity)과 혁신(Innovation)이라는 두가지의 측면에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생산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과정으로서 서비스와 제품에 지식이 적용된 결과이며 혁신은 지식을 새롭게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지식의 적용에 대해 「지식특강」이라는 한 기고문에서 미국·일본·독일의 상황에 빗대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은 생산성에 집중함으로써 세계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반면 미국은 그 기간동안 생산성과 함께 혁신에 집중했다. 혁신을 무시했던 일본은 최근 미국을 필사적으로 따라잡으려 했으나 결과는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한편 독일은 혁신을 완전히 무시했으며 따라잡으려 시도하는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드러커에 의하면 지식사회는 이미 2차대전 직후부터 기업경영 등에 적용돼 경영혁명의 형태로 도래하기 시작했으며 이제 지식은 세계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자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지식사회가 고도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는 아직도 지식을 독일의 「일반교양」이나 영국과 미국에서의 「인문교양」 즉 개인의 한평생 직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치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드러커는 분명하게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이 없는 나라가 후진국으로 전락했던 것처럼 앞으로 21세기 지식사회에서는 지식이 없으면 국가나 사회는 망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은 무엇이고 지식이 중심이 되는 지식사회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명저 「탈자본주의사회」에서 드러커는 지식에 대해 한마디로 「오직 응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응용되는 지식은 「매우 전문적인 것」을 뜻한다. 20세기 초까지 일반교양이나 인문교양이 개인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면 지식은 응용할 수 있는 것 즉 응용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같은 지식은 곧 사회적 지위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지식사회에서의 지식은 책이나 데이터뱅크 또는 소프트웨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머물러 있는 것은 오로지 정보(Data)만을 담고 있다. 드러커는 지식이란 언제나 사람에 의해 구현되고 창조되는 것, 또한 확장되고 개선되며 적용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식에 대한 이같은 정의는 정보와 지식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정보가 물 흐르듯 흐르는 사회를 정보사회로 정의한 앨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 같은 미래학자들의 사상과 분명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출간된 앨빈 토플러의 저서들이 드러커의 저서들에 의해 강력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지식사회에 대해서도 드러커는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드러커는 우선 지식사회에서 부를 창조하는 중심적인 활동은 자본의 배분이나 노동의 투입이 아닌 지식을 배분하고 적용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또한 지식사회의 주도적인 사회집단은 지식을 배분하고 적용하는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라고 정의하고 있다.

 드러커는 지식사회에서 지식노동자를 배출하는 교육, 그 가운데 특히 정규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교육이 반드시 전통적인 학교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사회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지식이 요구될 것이며 특히 최신 지식의 경우는 정상적인 학업연령을 훨씬 지나서도 끊임없이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드러커는 지식사회에서 진정한 투자는 기계나 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식노동자에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지식노동자 없이는 아무리 최첨단 정밀기계나 시스템도 비생산적인 도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끝으로 지식사회를 자본가(고용인)와 반대되는 개념의 피고용자(지식노동자)사회라고 쉽게 풀이하고 있다. 자본 혹은 노동기반의 생산방식에서 지식기반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을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 시대」로 해석한 것이다.

 지식사회에서 피고용자들은 생산수단인 연금과 기금의 수혜를 통해 자본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자본가는 더 이상 피고용인들에게 생산수단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정적으로 지식사회에서의 생산도구(지식)가 피고용자의 몸에 지닐 수 있는 이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드러커의 지식사회는 생산도구(지식)를 소유한 지식노동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서현진기자 j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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