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 구자홍 LG전자 부회장

 LG전자미디어CU(Culture Unit)는 LG전자를 비롯, LG정보통신·LG마이크론·LG히다찌·LGLCD·LG정밀·C&D합병사·LG전자서비스 등 7개 전자·정보통신 관련업체로 구성된 LG그룹의 주력사업군이다. 지난해 말 단행된 그룹인사에서 LG전자미디어CU는 국내 기업 사상 유례 없이 조직 전체의 장이 아닌 사업본부장을 사장으로 탄생시키는 등 2명의 사장 승진을 포함해 무려 42명의 임원 승진을 단행했다. 이같은 대규모 승진이 지난 95년 LG전자미디어CU를 맡은 이래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밝히는 구자홍 LG전자 부회장(전자미디어CU장)은 그 이유를 『성과가 있으면 반드시 보상이 뒤따른다는 확신을 임직원 모두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말 이미 노사간에 원만한 합의로 99년 임금 및 단체협상을 끝내고 새해를 맞은 자신이 아마 국내에서 가장 행복한 경영자일 것』이라고 새해를 맞는 소감을 밝힌 구 부회장은 모든 임직원이 한마음이 된 지금은 올해 기업환경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대담:양경진 가전산업부장

 -지난 한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LG전자는 매출 및 순익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한해는 무척 어려운 한해였습니다. 내수시장이 무너지고 CIS 등 전략수출시장마저도 금융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내부적으로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해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극대화하고 여기에 더해 내수보다는 수출에 자원을 집중한 것이 성과를 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조원의 매출을 살펴보면 내수시장에서는 전년에 비해 30%가 줄어들었지만 수출은 26%나 늘어 내수에서의 부진을 만회했습니다. 특히 수출주력제품인 CPT와 CDT·CD롬 등의 가격이 20% 이상 떨어져 한때는 큰 폭의 손익악화가 예상됐지만 원가개선 및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하락분을 흡수해 이제는 LG전자 제품이 어느 시장, 어느 제품과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IMF를 맞은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올해 전자산업 전망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만.

 ▲최근 S&P·무디스 등 세계적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 정부 및 기업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외국자본의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구조조정에 따른 성과가 어느 정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정부의 강력한 내수부양책 등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올해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수경기가 회복되는 데는 상당 시간이 소요되고 해외시장 또한 세계경기의 침체가 지속되고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연말부터 원화절상으로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올해 역시 결코 낙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환율입니다. 벌써부터 원화절상으로 수출에 타격이 오고 있습니다. 경제회복을 위해서 환율이 적정하게 유지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 경영방침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겠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LG전자를 비롯한 LG전자미디어CU가 위기를 극복하고 CU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비상경영체제로 나가겠다고 신년사를 통해 밝혔습니다. 올해 매출목표도 지난해와 비슷한 10조원으로 책정한 것도 외형보다는 내실을 다지겠다는 의지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올해 우리가 풀어야 할 최대 과제는 정부 시책에 따라 부채비율을 올해 안으로 2백% 이하로 낮추는 것입니다. 앞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사업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입니다. 또 승부사업에서 핵심역량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모든 평가의 출발점이 성과인 만큼 성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도 주력하겠습니다. 성과주의 문화를 정착시켜 누구든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전해 성과를 창출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상응하는 철저한 보상을 하기 위해 지금은 연구소에 한해 실시하고 있는 연봉제를 올해부터는 대리급 이상 전사원에게 확대할 것입니다. IMF 이후 다소 침체된 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1년에 한번 조정되는 연봉과는 별도로 성과가 나타났을 때 곧바로 보너스 형태로 1인당 최고 5천만원까지 지급하는 「챔피언 인센티브 제도」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비상시기인 만큼 구조조정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LG전자를 비롯해 전 CU에 대한 사업구조조정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됩니다. 부품에서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특히 재무구조 개선에 역점을 두고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해의 구조조정이 한계사업 및 부진사업을 정리하고 비효율적인 부문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재무구조 혁신을 통한 부채비율 2백%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통신과 모터·펌프사업부문의 매각과 총무분야의 분사 등 총 7개 사업에서 철수했고 3건의 사업매각, 5건의 분사가 이루어졌지만 앞으로도 일부 사업에 대해 외자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수익성 및 경쟁력이 없는 사업 및 유휴자산을 지속적으로 매각할 계획입니다. 현금유동성을 비롯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생각입니다.

 -본격적인 디지털시대의 개막은 LG전자에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디지털TV를 비롯한 정보가전사업에 대한 LG전자의 계획을 들려 주시죠.

 ▲21세기를 눈 앞에 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신기술입니다. 특히 디지털기술은 가전사업뿐 아니라 정보통신 등 전자·정보통신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디지털시대를 앞둔 지금이 국내 전자·정보통신업체들에는 과거 아날로그시대보다 상황이 훨씬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시절 우리는 기술의 낙후로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했지만 디지털부문에서는 어느 선진국 못지 않은 기술을 갖고 있어 디지털시대의 개막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갖고 있는 기술을 어떻게 시스템화하고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LG전자는 디지털TV와 첨단 디스플레이사업을 승부사업으로 선정해 연구인력 및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리하게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완벽한 제품을 개발해 전세계 디지털TV 시장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시장을 공략할 것입니다.

 -국내 전자업계가 빅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습니다. 빅딜대상에 LG전자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빅딜로 인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 등은 LG전자에 커다란 변수입니다. LG가 반도체사업을 포기할 경우 LG그룹의 전자·정보통신사업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것입니다. 앞으로 첨단분야에서 승부를 걸어야 할 LG전자미디어그룹으로서는 핵심인 반도체가 없다는 것이 세계 유수 전자업체들과의 싸움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 분명해 안타깝기만 합니다. 반도체분야의 구조조정만큼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도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3사체제로 유지돼 과열경쟁에 따른 조치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비록 과거에 우려할 정도의 과열경쟁이 있었다고 인정하더라도 최근 들어 전자 특히 가전분야에서 3사 최고경영자 서로가 대화를 통해 공정한 경쟁과 산업발전을 위해 협력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3사체제든 2사체제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고객들에게는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부회장께서 노조위원장을 업고 달리기 하는 모습이 광고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광고가 보여주는 것처럼 LG전자의 노사관계는 다른 기업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 얘기를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IMF의 실질적인 첫해인 지난해도 어려웠습니다만 제게는 LG전자의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지난 89년이 가장 어려웠던 한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임직원들이 서로 도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당시는 노사분규로 팀워크가 무너져 헤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노사관계를 노경관계로 부르고 있습니다만 노경관계는 기업경쟁력의 원동력입니다. 노경관계의 안정 없이는 기업의 생존은 물론 성장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노경관계는 과거 화합이나 협력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가치창조의 단계로 발전돼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10년 동안 경영자로서 신뢰감을 심어준 것이 현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정도로 LG전자 노경관계가 이루어진 밑바탕이 됐으며 이것이 지난 연말 대통령상인 노사화합대상을 수상하게 된 배경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이제 노경관계의 전면에서 멀어지는 것 아니냐고 노조 간부들의 농담섞인 얘기도 있지만 LG전자의 경영자로 몸담고 있는 한 과거와 조금도 변함없이 바람직한 노경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그 광고에 게재된 사진은 사내체육대회에서 제가 노조위원장을 업고 뛰는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최고경영자가 노조위원장을 업고 뛰는 사진이 보여주는 그대로가 바로 LG전자의 경쟁력입니다.

<정리=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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