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미완성 구조조정

 필자가 작년 4월 연구원장직을 맡고 난 후 가장 많이 받는 인사말은 『구조조정 몇 명이나 했느냐』다. 구조조정은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강화하는 것이어서 경영체제를 개선하고 비능률 근로자를 줄이거나 바꾸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

 유연한 노동시장이 조성되고 실업지원제도가 정착되면 직장을 새로 얻고 그만두는 일이 흔한 일이 될 터이나 아직 우리 형편에는 사람 줄이는 구조조정은 참으로 어렵다. 직장을 잃으면 목이 잘렸다고 할 정도니 구조조정은 사람 죽이는 일만큼 힘들다고 봐야 하겠다. 누군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선진국과 대응할 경쟁력을 갖춘 경영이 아니고는 생존이 어렵게 됐으니 피가 마르는 개혁인들 피할 수가 없게 됐다.

 무엇이 구조조정을 강요했는가.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는 잘되고 있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통하지 않게 된 것은 국제화 노력에 일단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국제 운동경기에 나가 우승을 하겠다면 먼저 국제경기 규칙을 익혀야 하겠고 국제적으로 앞서가는 팀의 운영과 훈련기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첨단기술을 개발해 선진국 기술과 일선에서 경쟁해야 하는 연구기관들에게는 정부출연이든 기업체의 연구기관이든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체질개선이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그 중에서도 정보통신분야 기술개발경쟁은 더욱 불꽃 튄다. 앞서가는 정보통신산업과 정보화가 새로운 기술에서 그 활력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보화 세계 속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지식기반 국가건설을 국정지표로 정했다.

 정보사회 건설이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정보통신 기술개발과 산업 진흥은 나라마다 우선순위가 매우 높다.

 96년부터 엄습한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정보통신분야 산업은 대부분 국가들의 경우 플러스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자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은 80년대 초부터 정부의 육성책 덕분에 비교적 높은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성장세만큼 치열한 시장경쟁에다 기술력이 부족한 탓이다. IMF 사태는 세계화 추세에 뒤진 우리의 의식수준과 잘못된 경제체제 때문에 얻은 체질병이기 때문에, 응급조치 후에는 구조조정이라는 체질강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보통신 분야 연구기관으로서 구조조정은 경영체제와 인력비용 구조의 개선뿐 아니라 연구개발 대상기술의 엄선, 첨단기술에 대한 정보수집력 강화, 개발기술의 상품화율 향상 등이 주요 메뉴가 돼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국가출연 연구기관이든 기업연구소든 간에 연구개발 단가를 낮춤으로써 우선 연구개발 용역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해야 하고, 질 좋고 쓸 만한 기술개발로 기술료 수입을 증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해온 구조조정 노력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장기적인 체질 정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법·절차와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여러 분야에서, 정부의 지침에 의해 계획된 구조조정 메뉴들이 기존의 법·제도·절차의 제약 혹은 미비 때문에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의식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회에 만연해 있는 총체적 비효율 요소는 법·제도가 잘못된 탓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관습과 그릇된 정신자세에 기인한다고 믿는다.

 국제사회의 규범을 만드는 사람들은 국가별 비리관련 지수를 만들어 발표하고, 불공정행위를 국제적 기준으로 다스리려 하고 있다. 지엽적으로 허용되던 비효율 관행이 앞으로는 저해요소가 돼 제재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제화의 추세를 감안한다면 국민적 의식의 구조조정이 완성될 때 지금 벌여놓은 제도적 구조조정들은 비로소 소기의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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