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의학용으로 널리 쓰이는 X선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뢴트겐선」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뢴트겐의 보고서를 읽고 나서야 자신이 이 대발견을 눈앞에서 뻔히 보고서도 놓쳤음을 깨달은 인물이 있다.
18세기에는 정전기의 발견에서부터 시작해 프랭클린의 유명한 연-피뢰침 실험에 이르기까지 전기에 대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결과가 축적되면서 19세기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진공방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기를 진공 속에서 방전하면 여러 가지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879년에는 크룩스 관이라는 것이 발명되었다. 긴 원통 모양의 진공 유리관 안에 음극과 양극 두 전극을 넣고 밀봉한 것이다. 관에 작은 구멍을 낸 뒤 진공 펌프를 연결해 관속의 공기를 모두 빼내고는 봉해버리면 된다.
크룩스 관의 양극에 전지를 연결해 전류를 통하게 하면 관 안에서 희미한 초록색 빛이 났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음극에서 어떤 광선이 나와 유리관 안쪽에 충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이를 음극선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몇년 뒤, 연구가 진전되면서 음극선이 유리는 통과하지 못하지만 알루미늄박은 그대로 투과해버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과학자는 유리관에 작은 창을 내고 그 부분에 유리 대신 알루미늄박을 붙였다. 그렇게 하자 음극선이 유리관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끌어낸 음극선에 여러 가지 물질을 비추면 다양한 색깔의 형광들이 나타났다. 학자들은 그 중에서 음극선 형광을 가장 잘 발생시키는 백금시안화바륨이라는 물질을 마분지 등에 발라서 음극선 검출용 스크린으로 사용하곤 했다.
1895년 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빌헬름 뢴트겐은 크룩스관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형광을 관찰하기 위해 실험실 안을 어둡게 하고는, 빛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크룩스관을 두꺼운 검은색 마분지로 둘러쌌다.
그런데 건너편 책상 위에 있던 형광스크린이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뢴트겐은 침착하게 상황을 살펴보았다. 형광스크린을 빛내고 있는 광선은 분명 음극선은 아니었다. 음극선은 두꺼운 마분지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그 사이에 놓아보았다. 크룩스관과 스크린 사이를 나무판자나 헝겊조각 등으로 가려보았지만 여전히 형광은 빛났다.
그런데 그 자리에 금속물질을 놓았더니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이 미지의 광선이 금속을 투과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뢴트겐은 이 광선이 다른 광선들과 마찬가지로 사진건판을 감광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건판을 하나 준비한 뒤 자신의 아내에게 중간에 손을 넣어보도록 설득했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X선 골격 사진이 나온 것이다.
뢴트겐은 이 광선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으므로 「X-ray」라는 이름을 붙였다. 수학에서의 미지수와 같은 표현을 쓴 것이다.
크룩스관은 뢴트겐의 X선 발견 이전부터 십수년 동안 많은 학자들이 실험에 사용해왔다.
따라서 X선 발견은 다른 누구라도 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음극선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한 윌리엄 크룩스는 실제로 X선을 검출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전부터 실험실에 두었던 미사용 사진 건판들이 포장도 뜯기 전에 이미 못쓰게 되어버렸던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는 뢴트겐의 보고서를 읽고 나서야 자신이 대발견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애석해했다고 한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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