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재활용을 촉진시킴으로써 환경보호를 도모한다는 취지 아래 정부가 지난 93년 도입한 폐기물 예치금제도에 대해 지난 4일 규제개혁위원회가 예치금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구연한제와 졸업제를 도입한 개선안을 발표했으나 가전업계의 불만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가전업계가 이처럼 폐기물 예치금제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예치금제도에 가전제품만이 가진 특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93년 처음으로 도입한 폐기물 예치금제도는 취지로 볼 때는 매우 선진적이고 이상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폐기물을 유발하는 제품을 만드는 생산자가 해당제품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처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미리 예치해두면 그 폐기물을 재처리하는 재활용사업자가 재처리한 만큼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혜택을 줌으로써 재활용을 촉진시키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전업계가 예치금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클 뿐 아니라 주관부처인 환경부가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업계에서는 가전제품의 경우 폐기물로 회수되는 비율이 현실적으로 2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예치금 대상품목은 중고제품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고 수출이 되지 않더라도 고장난 제품이나 중고제품의 수리과정에서 2대 내지 3대의 부속품들을 합쳐 다시 1대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실정에서 가전업계가 1백대에 해당하는 예치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80대에 해당하는 예치금은 결국 재활용사업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부의 재정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또한 당초 취지와 달리 가전제품을 재활용하는 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해 대부분 폐기물로 처리돼 버리기 때문에 예치금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당 38원이라는 요율을 적용해 올해 생산한 제품분에 대해 내년 초에 납부토록 돼 있는 예치금의 납부방식도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가전제품은 내구연한이 5년에서 10년 이상이지만 예치금을 폐기물로 처리되는 시점보다 5년 내지 10년 먼저 납부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만약 생산자들이 직접 나서 폐기물을 1백% 회수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5년에서 10년 전에 납부해 두었던 돈을 이제야 환급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손해를 보게 돼 있는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해 내구연한제를 도입, 미리 납부하는 예치금에서 내구연한에 해당하는 기간의 법정 이자율만큼 경감해 주는 방향으로 예치금 납부방식을 개선했다.
또한 폐기물 예치금제는 재활용사업을 활성화시켜 폐기물을 줄여보자는 것이 원래 취지이기 때문에 회수율(재활용율)이 일정수준 이상에 달하면 예치금 대상에서 제외시켜 주는 졸업제도도 새로 도입했다.
그러나 가전업계는 졸업제도에 명시된 회수율이 90% 수준이기 때문에 비록 특정품목의 졸업 회수율을 다시 산정할 경우 환경부가 관계부처와 협의토록 한다는 단서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회수율이 20%밖에 안되는 가전제품은 졸업혜택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가전업계가 재활용센터를 지어 가전 폐기물의 자체 회수에 나설 목적으로 업체당 2백억원에서 3백억원이라는 막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음에도 예치금 졸업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유성호기자 sunghy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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