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나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항공·초고속전철 등 첨단기술이 다른 선진국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달돼 있는 기술강대국이다. 이는 드골과 같이 과학기술을 국가정책의 기초로 삼고 진흥시킨 지도자들의 노력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나 어떻게 보면 그들 나름대로 전통을 이어오고 부단한 혁신을 통해 개선한 교육제도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 프랑스의 정부관료·과학기술자·교수들이 학교를 자주 방문해서 교육제도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프랑스의 독특한 교육제도를 알게 됐다. 프랑스에는 5년제의 초등학교, 4년제의 중등학교, 3년제의 고등학교가 있는데 고교졸업 후 학생의 10∼25%는 소위 2년제의 기술전문대학에, 70∼80%는 기초과학을 가르치는 3∼4년제의 일반대학교 기초학부에 진학한다. 그리고 2∼5%의 최상급 학생들은 소위 엔지니어(공학기술자)가 되기 위해서 INSA라고 불리는 4개의 응용과학기술대학들과 가장 뛰어난 인재들의 기술사관학교격인 5년제의 그랑제콜(Grandes Ecoles) 기초학부에 진학한다.
이 그랑제콜의 기초학부에서는 2년 동안 20학점의 수학, 12학점의 물리, 6학점의 화학을 가르치고, 3학점의 설계제도, 1학점의 철학, 2학점의 어학을 배우며 졸업 직후에 하루나 이틀에 걸쳐서 국가시험을 보고 석차에 따라서 3년 동안의 교육을 받는 여러 등급의 응용학부 그랑제콜에 진학하게 된다. 철저하게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을 프랑스인들 나름대로 불평없이 잘 소화해 내고 있는 것이다.
소위 UNIVERSITE로 불리는 일반 대학들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수능 2백점 정도 이상의 보통학생들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데 교양학부 3학년에 진학하기 전에 50∼70% 정도가 탈락하고 졸업할 때에는 또 상당수가 탈락하게 된다고 한다. 2년제의 기초학부 과정을 3년 내에 마치지 못하면 다른 대학교의 같은 학과에는 갈 수가 없게 돼 있다고 한다.
이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대학과 같은 명문대학들에서 같은 필수과목을 두 번 낙제하면 그 필수과목과 관련된 학과에는 독일내 어느 대학에도 못 가게 하는 철저한 전문가 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국립 응용과학기술대학(INSA-LYON)의 오영석 교수에 의하면 프랑스 대학에서 1학년·2학년을 2년 안에 마치는 학생은 단지 18.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은 누구나 4년에 마치는 것으로 돼 있고 한 대학에서 탈락한 학생이 다른 대학으로 자유롭게 전학가는 것은 매우 어렵게 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언젠가 우리 대학이 무리한 졸업정원제를 실시했다가 낭패를 본 것도 우리의 또 다른 교육풍토를 보여준 것이다.
또한 5년제의 응용과학기술대학에서는 1년간을 몇 개월씩 나누어서 현장기술자로서 현장기술교육(OJT)을 받게 한다. 이러한 교육은 우리나라 대학과 같이 지도교수와 학교가 주선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이 국내외의 회사에 서신을 직접 보내서 회사를 정하고 훈련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학교에 돌아와서 세미나 발표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습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자립심을 키우게 되고 진정한 사회체험을 하게 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오영석 교수에 의하면 프랑스의 대학들은 개발한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산업체에 전달하기 위해서 INSAVALOR라는 기술이전센터를 학교에 회사 형태로 설립해서 40여명의 직원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배울 점은 프랑스의 대학들이 다른 대학 또는 국립연구소 등과 시설을 교환하며 매우 활발한 협동연구를 수행하고 있고 산업체들도 고가의 기자재를 각자가 보유하는 것이 아니고 비록 경쟁적 관계에 있는 회사들일지라도 공동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이곳에 고가 공동기자재를 설치하고 공동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고가의 기자재나 특수설비를 너도 나도 구입해서 비경제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구소·대학·산업체에서 특히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하고 특성화된 프랑스의 대학교육연구제도의 장점들을 잘 연구해서 우리나라 대학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내용과 교육방식을 혁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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