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파괴는 소비자들의 실속구매 심리가 확대될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IMF 이후 확산되고 있는 가격파괴는 전자부문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전자제품의 가격파괴는 다른 산업분야와 그 성격이 다르다. 전자제품은 부진한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단순히 가격을 내릴 수 없다.
IMF 이후 초기에는 전자업체들도 판매가 부진한 제품의 가격을 낮춰 IMF형 상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상품은 단발성에 그쳤다. 실속형을 찾는 고객이 꾸준히 늘어나자 전자업체들은 IMF형으로 제작된 새로운 모델을 계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들 제품은 저가이기는 하지만 쉽게 볼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각사의 기술력이 집약돼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은 유통구조상 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제조원가를 낮추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싸구려 부품이나 단순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품질이나 내구성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모든 제품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산공정 개선을 통해 부품수를 줄이고 기존 제품과 동일한 품질을 가진 소재를 개발하는 등 생산기술 제고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가전제품 가운데 IMF형 모델들은 부품수를 줄이고 제조공정을 줄이기 위해 새롭게 금형을 개발하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삼성전자 TV제조부문의 경우 토털 밸류 이노베이션(TVI)이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TV의 제조원가를 20% 이상 낮췄다. 부품수와 공정수를 줄였지만 기존제품과 성능과 품질·내구성에서 차이가 없다. 삼성전자는 외장부문에는 오히려 투자를 늘렸는데 이 때문에 제품 자체는 더욱 좋아졌다.
LG전자나 대우전자 등 가전사들의 경우 5대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모두 비슷한 노력을 기울여 IMF형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TV나 VCR의 기능을 일부 축소하거나 냉장고 외장재의 등급을 낮추기도 하지만 모두가 실질적인 원가절감을 이룰 수 있도록 새시부분의 공정수를 줄이고 부품수를 줄이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IMF사태 발생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가전3사는 TV나 VCR·냉장고·세탁기의 제조원가를 15∼20% 정도 절감하는 기술을 확보해 놓고 있다. 또 이를 적용해 IMF형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29인치 TV의 실판매가격이 50만원대에 이를 만큼 IMF형 제품들은 가격이 싸다. 그러나 이들 제품은 어느 하나도 마구잡이로 만든 싸구려 제품이 결코 아니다.
<박주용기자 jy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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