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블루 퍼시픽"-SGI "블루 마운틴", 슈퍼컴 주도권 힘겨루기

 「어느 슈퍼컴퓨터가 세계 최고인가.」

 미국 IBM과 실리콘그래픽스(SGI) 사이에 슈퍼컴퓨터 성능을 둘러싸고 뜨거운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의 당사자는 IBM이 지난달 말 발표한 「블루 퍼시픽」과 SGI가 최근 공개한 「블루 마운틴」.

 이들은 모두 미국 에너지부 의뢰로 개발된 것으로 용도가 모두 핵무기 모의실험을 위해 이용된다.

 먼저 기선을 잡은 쪽은 IBM. 지난달 말 IBM은 초당 3조9천억회(3.9테라플롭스)의 연산처리 속도를 갖는 세계 최고속 슈퍼컴퓨터 「블루 퍼시픽」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에너지부 산하 캘리포니아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 설치중인 이 슈퍼컴퓨터는 총 5천8백여개의 파워PC칩이 탑재된 「RS6000 SP」기종으로 일반 데스크톱 PC보다 처리속도가 1만5천배 정도 빠르며 메모리용량은 데스크톱의 8만배인 2.6테라바이트(TB)에 이른다. 저장용량도 75TB로 미국 국회도서관의 모든 책을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슈퍼컴퓨터는 핵무기 안전성이나 보안, 신뢰성 등 각종 모의 핵실험에 사용된다.

 이어 SGI도 최근 에너지부 산하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와 공동으로 세계 최고속 컴퓨터이자 최첨단 그래픽 시스템을 공개했다.

 「블루 마운틴」이라는 코드명으로 설치된 이 슈퍼컴퓨터 역시 핵무기 관리에 이용될 예정인데 핵저장의 안전 및 신뢰성을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게 SGI의 설명이다.

 총 6천1백44개의 밉스 R10000 프로세서가 탑재돼 4테라플롭스 이상의 피크 속도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 「블루 마운틴」의 핵심은 48대가 병렬로 연결된 1백28개 프로세서를 기반으로한 「크레이 오리진 2000」 서버와 「오닉스2 인피니트 리얼리티」 비주얼 시스템.

 특히 오닉스2 비주얼 시스템의 결합으로 1GB의 대용량 데이터를 시각화할 수 있는데 이같이 강력한 비주얼 기능은 「블루 마운틴」만이 갖는 특징이라고 SGI는 강조한다. 그 결과 그동안 몇주 이상 소요되던 복잡한 과학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단 몇분 안에 얻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SGI는 또 최근 블루 마운틴이 대형 컴퓨터의 표준속도 테스트방법 중 하나인 린팩(Linpack)에서 초당 1조6천억회의 연산을 실행,세계 최고속임을 공식으로 입증받았다고 밝혔다. IBM의 「블루 퍼시픽」이 아직 연구소에서의 설치가 완료되지 않아 정확한 성능 측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블루 마운틴」이야말로 진정한 세계 최고라는 얘기다.

 즉, 중요한 것은 이론적인 피크성능이 아나라 실제 테스트에서 검증받은 결과라며 이 점에서 「블루 마운틴」이야말로 대규모 연산과 대규모 그래픽에서 진정한 세계 최고를 실현했다고 SGI는 주장한다.

 이와 함께 SGI는 최근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슈퍼컴퓨터링(SC) 98」 콘퍼런스를 통해 6개월마다 발표되는 세계 5백대 슈퍼컴퓨터 사이트에서 자사가 총 1백83개의 사이트를 확보, 여전히 슈퍼컴퓨터분야의 선두업체임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즉, 세계 최고성능의 슈퍼컴퓨터 5백대중 자사기종이 1백83대나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의미있는 것은 상위 10대 사이트중에서는 7개, 상위 1백대 사이트 중에서는 46개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질세라 IBM도 SC98에서 지난 6개월동안 자사 슈퍼컴퓨터의 5백대 사이트 점유율이 40%나 늘어나 총 1백5개의 사이트를 확보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비록 이번에 발표된 5백대 리스트에서 순위는 SGI와 선 마이크로시스템스(1백26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지만 가장 두드러진 약진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IBM의 주장이다.

 양사간의 신경전도 날카롭다. SGI측은 『IBM이 로스 앨러모스와 리버모어 연구소간의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경쟁관계를 깨버렸다』며 『IBM의 「블루 퍼시픽」 발표는 SC98에서 SGI가 「블루 마운틴」을 공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미리 선수를 친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SGI의 리처드 벨루조 회장겸 최고경영자(CEO)는 『일등은 언제나 하나이며 우리가 바로 일등이다. 내 견해로 IBM이 이전에 세계 최고속이라고 발표한 것은 자신들이 1위자리를 빼앗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비아냥됐다.

 이에 맞서 IBM도 다시 언론을 통해 여전히 「블루 퍼시픽」이 세계 최고속이며 슈퍼컴퓨터 시장에서 자사가 입지를 넓혀 가고 있는 반면 SGI의 영역은 점차 줄어드는 실정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벨루조 회장의 주장에 대해 「블루 마운틴」과 「블루 퍼시픽」간의 성능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며 그의 주장을 애써 무시했다.

 즉, 에너지부가 추진하는 「고속 전략적 컴퓨팅 계획(ASCI)」의 목표는 슈퍼컴퓨터의 한계선을 한단계씩 끌어올리려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결국 IBM과 SGI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양사에 모두 개발을 의뢰했던 에너지부는 결론적으로 두개 기종의 성능차는 어떤 테스트방법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측은 SPPM이라고 하는 성능 측정방법을 이용했을 때 SGI의 「블루 마운틴」이 물리적 벤치마크에서 IBM의 「블루 퍼시픽」보다 10%정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5백대 슈퍼컴퓨터 리스트에서 사용하는 린팩 테스트에서도 SGI의 성능이 일단은 세계 최고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블루 퍼시픽」의 경우 IBM 공장에서 다른 방법으로 테스트됐기 때문에 직접 「블루 마운틴」과 성능을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재의 잠정적인 결론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블루 퍼시픽」의 리버모어 연구소 설치가 완료되는 올 연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구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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