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메모리, 오디오 기록매체로 주목

 일본에서는 최근 플래시메모리가 오디오 매체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반도체 기술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반도체 자체를 오디오 기록매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거듭해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현실성 있게 떠오른 메모리가 플래시메모리로, 최근 플래시메모리 대용량화 기술이 급속히 진전되면서 플래시메모리를 매체로 하는 초소형 오디오기기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현재 널리 활용되고 있는 오디오 기록매체는 카세트테이프와 CD, MD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매체는 자체 크기가 있어 초소형 오디오기기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플래시메모리는 초소형인 칩 자체를 기록매체로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미세화와 대용량화 기술의 발전 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소형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CD 수준의 음질로 1시간 분량의 음악을 녹음·재생하는데 필요한 플래시메모리 용량은 64MB 정도. 이는 현재 실용화 단계에 있는 대용량 플래시메모리 몇 개로 실현할 수 있는 용량이다.

 문제는 대용량 제품의 단가가 아직은 높은 상태라는 점. 그러나 최근 대부분의 플래시메모리업체들이 대용량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향후 단가하락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신기술 적용과 미세가공기술의 진화로 가격 인하요인이 발생하고 있어 2000년 이후에는 대중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한 소형 오디오기기라는 구상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일본 소니로, 지난 89년 개최된 IEEE ISSCC(International Solid State Circuits Conference)에서였다.

 세계 반도체 기술자들의 모임인 이 회의에서 소니의 한 기술고문이 강연을 통해 『반도체 자체에 음성을 녹음하는 소형 오디오기기, 이른바 실리콘 리코더는 오는 2000년께 본격적으로 실용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올해 ISSCC에서는 「귀걸이형 워크맨」의 실용화가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화제가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같은 기기가 실제 실현되지 않았다. 이러한 용도로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카세트테이프 및 CD, MD 등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야 하지만 플래시메모리는 다른 기록매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다.

 이 같은 사정을 반영하듯 현재 플래시메모리 수요의 90% 이상은 휴대전화단말기·PC 등에 탑재하는 소용량 프로그램 기록용으로, 오디오기기의 기록매체로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대용량 데이터 기록용 플래시메모리에 대한 수요는 극히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오디오업체들은 이르면 2000년부터 이를 미니디스크 이후의 차세대 오디오용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표명하고 나섰다.

 이 영향으로 최근 플래시메모리업계들이 저가를 실현한 대용량 데이터 기록용 플래시메모리 양산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상황이 급진전되고 있다.

 플래시메모리분야 후발 참여업체인 히타치제작소가 최근 경쟁업체들보다 한발 앞서 오디오용 시장을 겨냥한 2백56Mb급 플래시메모리 양산계획을 발표했다.

 히타치는 다른 업체들과 달리 사업초기부터 대용량 제품을 중심으로 추진해 왔는데 지금까지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용으로 주로 사용돼 온 플래시메모리가 용량 확대에 힘입어 올해 이후 오디오용으로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시장선점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히타치가 생산하는 플래시메모리는 멀티레벨 저장방식을 채택한 2백56Mb급 제품으로 미쓰비시전기와 공동으로 개발했다.

 멀티레벨 저장방식은 한 개 메모리셀에 복수 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로, 두 회사가 공동 개발한 것은 셀당 2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2백56Mb급 제품이다.

 멀티레벨 저장방식은 지난 80년대 중반 기술사양이 공개됐으나 당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95년부터 시작된 D램 가격하락에 자극된 플래시메모리업계가 플래시메모리 가격경쟁력 확보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멀티레벨 저장방식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플래시메모리업계는 셀당 2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제품뿐만 아니라 3, 4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높은 관심을 쏟고 있다.

 히타치는 내년 초부터 이번에 개발한 셀당 2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2백56Mb 플래시메모리를 월 50만개 규모로 양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바라키현 히타치나가시 나가제조본부에 2백56Mb 플래시메모리 양산용 최첨단 생산설비를 도입해 내년 초부터 가동에 들어간다.

 또 히타치와 공동 개발한 미쓰비시전기도 내년 초부터 샘플출하를 시작할 방침이나 아직 구체적인 양산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

 도시바도 2백56Mb 플래시메모리시장 참여를 선언한 상태다. 올해 안에 월 20만개 규모로 양산을 시작해 2000년까지 그 규모를 50만∼1백만개로 늘릴 방침이다.

 국내업체인 삼성전자도 이 같은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1백28Mb 플래시메모리를 자체 개발, 양산을 시작했다.

 특히 그동안 플래시메모리시장을 주도한 인텔·AMD·후지쯔·암텔 등보다 앞서 1백28Mb 제품을 출하함으로써 D램과 S램에 이어 플래시메모리시장에서도 주도권을 가지고 본격적인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현재 이 제품의 샘플을 기존 시장인 메모리카드·디지털카메라·PDA 등의 업체는 물론 디지털오디오업체들에도 제공, 플래시메모리의 오디오 기록매체 실현에 일조하고 있다.

 소용량 플래시메모리시장에서 최대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후지쯔·AMD 연합도 최근 64Mb급 플래시메모리 시제품을 출시하면서 대용량 플래시메모리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소용량 제품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이들 업체의 대용량 시장 참여는 전체 생산량 확대와 그에 따른 가격인하를 선도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실제로 후지쯔는 내년 하반기에 월 1백20만개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후지쯔는 현재와 같은 추세로 제품 개발이 진행될 경우 늦어도 2002년에는 1Mb당 가격을 1백엔까지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플래시메모리는 가격경쟁력이 높은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향후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저가화뿐만 아니라 대용량화도 한층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 플래시메모리는 조만간 소형화가 요구되는 휴대형 오디오기기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매체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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