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하이테크산업의 메카이자 90년대 미국 호황을 주도해온 실리콘밸리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이 지역에 하이테크 수출의 대부분을 의존해 오던 실리콘밸리도 직격탄를 맞게 된것. 문제는 아시아 지역 불황의 여파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 부근 산타모니카에 소재한 시장조사기관 밀켄인스티튜트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아시아지역 침체로 실리콘밸리의 경기도 내년까지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실리콘밸리의 아시아지역 하이테크수출은 전년동기대비 12%(37억 달러)가 줄어들었다.
또한 지난 2·4분기에는 실리콘밸리의 최대 시장인 일본에 대한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가 감소했고 한국은 무려 38.7%나 곤두박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밀켄은 실리콘밸리 지역 대도시 중 특히 새너제이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내년에 이 도시의 실질 소득 성장률은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수출 중 75%가 하이테크 분야였는데 여기서 하이테크 업계가 밀집해 있는 새너제이의 비중이 95.7%를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시아 지역 하이테크 시장에 대한 실리콘밸리의 수출 의존도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91년 이후 실리콘밸리의 대아시아 하이테크 수출은 2배나 늘어났으며 96년에만도 수출액이 4백억 달러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이 지역이 명실상부한 미국의 수출전진기지였던 셈이다.
조사의 책임을 맡았던 밀켄의 드볼 이사조차도 실리콘밸리의 아시아 지역 의존도가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다며 실토할 정도다. 특히 새너제이는 개인소득의 25%가 아시아 수출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밀켄은 최악의 경우 중국 위안(元)화의 평가절하가 단행된다면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만도 47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밀켄의 전망은 캘리포니아 무역청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미 상무부 등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수치를 넘어 상당한 의미를 띠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로의 수출호조도 현재로선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생필품 주요 수출국이긴 하지만 아시아 위기로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멕시코 또한 페소화 하락으로 언제 위기가 재연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업체들의 주가도 이달초 대폭락을 계기로 계속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아시아지역 수출 타격으로 매출 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이 지역 하이테크 업체들은 본격적인 감원과 급여 삭감에 나섰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가 2천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비롯, 내셔널 세미컨덕터(NS)가 1천4백명, 인텔이 10년만에 최대인 3천명을 올해 안에 정리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업체인 퀀텀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인원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자출판 관련 소프트웨어 업체인 어도브 시스템스도 10%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다.
또 지난 7월 임원들의 급여를 5%씩 삭감했던 세계 2위 컴퓨터 업체 휴렛패커드(HP)는 아시아 지역 수출부진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최근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감원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적인 것은 실리콘밸리 지역의 투자열기는 아직 식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에 의하면 지난 2·4분기 이 지역에 투자된 벤처자본은 12억5천만 달러로 여전히 미국의 벤처투자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가나 벤처기업가들 역시 하이테크 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욕적이다.
이 지역에 소재한 기술 조사 업체인 크리에이티브 스트래티지스의 팀 바야린 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 실리콘밸리의 투자붐은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지 기업들 사이에서 실리콘밸리가 경제한파로부터 영원히 무풍지대로 남을 것이란 환상은 적어도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치솟는 물가와 부동산 가격의 폭등, 이로 인한 삶의 질의 하락 등은 실리콘밸리 두뇌의 요람인 스탠퍼드대 출신 인재들을 다른 지역으로 유출시키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지적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분석가들은 실리콘밸리가 아시아 수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모색할 수 있는 것이 유럽에 대한 수출 강화라고 진단한다.
유럽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고 유럽의 하이테크 수준이 미국에 아직 뒤처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실리콘밸리의 유럽에 대한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16%(12억 달러) 늘어나 아시아 지역과 대조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가 예정과 같은 호황을 재연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구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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