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E레이트(Rate) 프로그램 실시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을 놓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 정부가 지난해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 계획을 발표하면서 본격화한 것으로, 초·중·고교와 도서관에서의 인터넷 사용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연간 22억 달러를 들여 이들 시설을 인터넷망으로 연결시키는 계획이다.
미 정부는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장거리전화사업자가 지역전화사업자에게 지불하는 회선 접속료 등으로부터 일정액을 적립, E레이트 기금을 마련해 왔다.
특히 앨 고어 미 부통령은 『E레이트는 미국 교육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이 프로그램 실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미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 기금이 세금 인상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히고 세금인상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인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상·하원의 통신소위원회는 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추진하고 있는 E레이트 기금 모집을 중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워싱턴 정가의 분석가들은 공화당이 E레이트 기금 마련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인상이라는 표면적 문제보다 올 2000년 미 대통령 후보로 나올 것이 확실시 되고 있는 앨 고어 미 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해서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미 공화당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은 이 기금을 「고어 세금(Gore Tax)」이라고 비난하면서 고어가 주도적으로 펼치고 있는 E레이트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어는 정치논리가 이 프로그램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 문제에 관해 정치적인 배제를 요구했다.
고어는 『정부는 E레이트 관철을 위해 계속 의회와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는 한편 『미국의 아이들에게 보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정치권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치권이 공방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장거리전화사업자들도 공화당에 힘을 실어줬다.
장거리사업자들은 미 의회에 E레이트 기금에 관한 반대 로비를 지속적으로 펼치는 한편 기금 마련을 위해 장거리전화요금 인하계획이 불가피하다고 밝혀 이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FCC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AT&T는 이 기금을 조성키 위해 장거리전화 한 통화당 5센트 가량의 인상요인이 발생, 이에 따른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고 MCI도 5.9센트 인상을 들고 나왔다.
이에 따라 미 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들도 장거리전화요금 인상을 우려하면서 이 프로그램 시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FCC는 미 장거리전화사업자들이 그 동안 지역전화사업자에게 지불했던 접속료가 최근 대폭 인하됨에 따라 인상요인이 상쇄된다고 밝히고, 장거리전화사업자들의 전화료 인상 움직임은 이 기금을 이용해 전화료를 인상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또한 FCC는 AT&T와 MCI에 E레이트 기금을 철폐하기 위해 소비자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FCC는 의회와 장거리전화사업자의 끈질긴 삭감요구에 E레이트 기금을 최근 삭감키로 결정, 올해 예상 모금액 22억달러에서 43% 삭감한 12억달러로 내려 잡았다.
이에 따라 FCC는 현재 E레이트 기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3만여 초·중·고교와 도서관에 재배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우선 지방 학교와 재정상태가 어려운 학교부터 이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E레이트 기금은 각급 학교와 도서관들이 인터넷 구축장비 구입시 20∼90% 할인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교육시장 특수를 노리고 있던 네트워크업체·시스템업체 등 정보기술(IT)업체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한편 지난 7월 말 상무부가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연간소득이 7만5천달러 이상인 고소득층 가구의 인터넷 이용률은 49.2%인 데 반해 저소득층의 이용률은 13.9%로 저소득층에 비해 3배나 앞서고 있었다. 이같은 보고서가 발간되자마자 정보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며 정부와 교육계는 E레이트 프로그램 강화를 다시 한번 주장하고 있는 데 반해, 수요자 비용분담 원칙을 주장하고 있는 의회는 이에 대한 전면 폐지로 맞서고 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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