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6주년] 포스트 IMF과제-컴퓨터(SW)

 국내 소프트웨어(SW)산업이 극심한 IMF 한파를 겪으면서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SW업체들이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서둘러 체질을 개선해야 하며 이를 위한 다각적인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SW산업의 위기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이나 지난해 말 IMF체제에 돌입한 이후 그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다. SW의 주수요층인 기업들은 불황에 직면하자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SW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정부 및 공공기관들은 긴축재정을 펼치면서 SW에 대한 구매 예산도 대폭 줄여가고 있다. 일반 소비 자 또한 오그라든 구매력만큼 SW를 덜 구입하고 있다.이같은 수요감소로 인해 SW업체들은 대부분 매출부진과 함께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분석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국내 SW업체의 매출 달성률은 평균 35.2%로 예년의 40%와 비교해 낮았으며 하반기 매출 달성률은 47.8%로 예상돼 올해 전체 SW업체의 목표대비 달성률은 83%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내 SW산업의 시장규모는 작년 대비 4% 남짓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 SW산업이 지난 95년 이후 연평균 40%대의 고성장을 구가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IMF로 인해 극심한 타격을 입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소 SW업체들의 매출 달성률이 대기업에 비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중소업체가 사실상 국산 SW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SW산업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비록 철회하기는 했으나 국내 워드프로세서 1위업체인 한글과컴퓨터사가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에 자본을 유치하려 했던 것은 국내 SW산업의 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이같은 위기가 곧 국내 SW산업 구조에 대대적인 개편을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국내 SW산업은 경쟁력 있는 SW업체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업체는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SW산업의 구조가 어떤 방향으로 개편될 것인가.

 여기에 대한 업계의 대체적인 견해는 외국계 SW업체, 중소 SW업체, 대기업 등 3각체제에서 외국계 SW업체들이 분야별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국내 중소업체와 대기업 가운데 소수의 경쟁력 있는 업체가 부분적으로 맞서는 구도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중소 SW개발업체들은 시장을 주도할 외국계 및 국내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자로 전락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IMF 이후 악화된 시장환경뿐만 아니라 각종 SW가 통합되는 정보통신(IT) 기술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특히 세계 표준과 시장지배력을 앞세운 외국계 SW업체들의 국내 시장장악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외국계 업체 가운데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과 같은 SW전문업체와 최근 SW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IBM·HP 등 하드웨어업체들의 주도권 다툼도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이 와중에 국내 SW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활의 기로에 선 국내 SW업체들은 따라서 저마다 활로모색에 부산한데 그 양상은 현재 대안사업의 발굴, 해외시장 개척, 그리고 업체간 제휴라는 세 가지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업체인 한글과컴퓨터는 향후 인터넷사업을 주력 사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며 그룹웨어업체인 핸디소프트는 CALS사업을 차세대 사업으로 선정, 역량을 모으고 있다. 또 삼성SDS·쌍용정보통신 등 SI업체들은 그룹웨어와 전사적자원관리(ERP)등을 통합한 업무용 애플리케이션SW를 신규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또 SW업체들은 최근 불황탈피를 위해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다. 올 들어 넥스텔·장미디어인터랙티브·큰사람정보통신 등 10여개사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해외소프트웨어지원센터」에 입주, 미국시장에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또 상당수 SW업체가 올 하반기 들어 미국·일본·호주 등지에 지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많은 SW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외국 SW업체와의 기술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어차피 외국업체와 맞상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 업체의 힘을 빌어 특정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전문업체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국내 SW업체들은 IMF 한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 SW업체들의 향후 진로는 험난하기만 하다. 대부분 SW업체들은 자본력이 뒤떨어지며 전문인력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더욱이 올 들어 매출난이 가중되면서 신제품 개발을 위한 기술투자는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규사업의 발굴이나 해외진출은 사실상 의욕만 앞설 뿐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대부분 SW업체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IMF 한파보다는 그 이후가 더욱 걱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국내 SW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는 좀처럼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SW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으며 각종 지원을 약속하고 있으나 아직 구두선에 머물 뿐 업계의 피부에 닿을 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SW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은 대부분 자금지원에 집중돼 있는데 SW업체들은 일시적인 자금지원보다는 적극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영업할 수 있는 수요를 진작시키는 정책을 바라고 있다.

 특히 정부의 무분별한 신규 SW업체 육성은 오히려 어렵게나마 연명하고 있는 기존 업체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육성은커녕 정부에서 가만 나뒀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업계에 팽배해 있다.

 정부 정책 부재에다 SW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인식이 낮은 점도 SW업체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 SW에 대한 불법복제 관행은 여전해 개선될 줄 모르고 있으며 SW를 구입한 기업, 공공기관들마저 가격만 깎으려하고 있다. 기술력보다는 가격을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공공기관의 최저가 입찰 관행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SW업체들의 목을 죄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SW업체들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곧 외국계 업체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산업구조 조정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구조조정은 또다시 SW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IMF 한파가 국내 업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진출한 외국 SW업체들도 올 들어 수요감퇴로 인해 상당한 매출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외국 업체들은 인건비와 제품개발비 등의 부담이 거의 없다시피해 국내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IMF 한파를 넘고 있다.

 SW업계 관계자들은 기술력의 차이로 이미 벌어진 국내 업체와 외국업체간의 격차가 IMF 이후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SW산업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점에서 최근 정부와 업계 일각에서 추진중인 SW 수요 활성화 방안은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국내 SW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정부기관에 대한 내년도 SW구입 예산을 늘려 배정하는 한편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개발업체의 비용도 지불할 수 있는 제도를 강구중이다.

 또 일부 SW업체들은 공동으로 우리SW살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또다른 한쪽에서는 공동 출자해 벤처기업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소비자들도 최근 국내 SW산업의 보호를 위해 SW를 불법복제하지 말자는 운동을 자발적으로 벌여나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할 경우 국내 SW업체들의 살 길을 열어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또 SW업체들도 대책 없이 외부환경의 변화만을 기다리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외국업체에 비해 낮은 경쟁력을 높이고 작은 몸집도 키우기 위해 동종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것도 적극 모색할 때가 왔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IMF체제가 시작된 지 10개월이 지난 요즘 『IMF는 오히려 그동안 거품만 있었던 국내 SW산업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한 SW업체 관계자의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렸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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