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슬라이딩 도어즈

 우리는 누구나 살아보지 못한 인생에 대한 꿈을 꾼다. 그리고 이러한 꿈은 늘 우리에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체념과 기대를 반복하게 만든다. 배우 출신인 피터 호윗 감독의 데뷔작인 「슬라이딩 도어즈」는 사랑의 또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로맨틱코미디다.

 사이버세대들이 인터액티브게임을 즐기듯 이 영화는 만약이라는 가정과 함께 각각 예스(Yes)와 노(No) 사이의 이야기를 쫓아 만들어진 한 여인의 운명게임 같은 영화다. 즉, 주인공 앞에 놓인 두가지 길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도미노처럼 그의 나머지 인생 역시 영향을 받는다는 것. 단지 「슬라이딩 도어즈」는 상황설정을 인간의 의지보다는 운명을 쫓아가게 만들면서 이야기를 좀 더 로맨틱하게 만들고 있다.

 광고회사의 직원인 헬렌(기네스 펠트로 분)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회사에 비치해둔 맥주 여섯 캔을 마셨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착잡한 기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가던 헬렌은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을 놓쳐버리고, 영화는 여기서 두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즉, 지하철을 놓치고 택시를 타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온 헬렌이 겪게 되는 일과 가까스로 지하철에 올라탄 헬렌이 겪는 앞으로의 인생이다.

 먼저 지하철을 타게 된 헬렌은 옆자리에 앉은 제임스(존 한나 분)와 알게 되고, 집으로 돌아와 동거중인 남자친구 제리(존 린치 분)의 정사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헬렌은 실의에 빠지지만 제임스와의 재회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암수 한 몸이다」라는 제임스의 말처럼 또 다른 불행이 그녀를 기다린다.

 한편 지하철을 놓친 헬렌은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 병원에 갔다오느라 늦게 집에 도착한다. 자신이 출근한 사이, 제리가 옛 애인인 리디아(진 트리플혼 분)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모르는 헬렌은 글을 쓰는 그의 뒷바라지를 위해 햄버거 집에 취직하고 고달픈 인생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리디아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된다.

 지하철을 탔느냐, 못탔느냐에 따라 이렇듯 헬렌의 삶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가지만 결론은 「또 다른 시작」이다.

 「슬라이딩 도어즈」는 두가지의 이야기를 동시에 교차 편집함으로써 자칫 진부하고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로 빠지기 쉬운 위험에서 탈피하며 이것이 색다른 재미를 준다. 각각의 내러티브는 지극히 단순하며 단조롭지만 교차 편집을 통해 빚어내는 감독의 아이디어와 동시에 두 인생을 연기해낸 기네스 펠트로의 매력이 영화에 경쾌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엄용주·자유기고가〉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