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둘러보아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구석이 없어 보이는 요즈음, 벤처로 이 난국을 돌파하자며 우리 정부는 대대적인 벤처정책을 펼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별법까지 제정해 대학생에서부터 중소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벤처일선에 나서기를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방향설정과 순서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다. 하나둘씩 만들어 가는 정성보다는 한번 보여주고 끝나는 전철을 밟지 않을까 두렵다. 이대로 가다가는 벤처 때문에 망했다는 괴담을 몇 년 후 하게 될지 모른다.
우선 정책적인 접근방식을 보자. 단기 실적주의에 의존하고 정부 주도적인 자세를 강조한다. 대통령이 표방하는 「민주적 시장경제」는 분명 민간부문이 중심이 된 경쟁시장의 발달을 의미한다. 정부의 역할은 여건조성 또는 시장환경 구축으로 승화돼야 한다. 혹시 지난날 새마을 공장이나 농공단지와 같은 개념으로 벤처를 키우려 한다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기업측면을 조명해 보자. 우선 벤처기업의 성공요건이 무엇인가에 따라 전략과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다. 국경 없는 비즈니스가 현실로 대두된 지금 전세계 기업들은 마케팅을 최우선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물론 능력 있는 기업가와 전문 경영진들의 역할이 동시에 고려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장과 상관없는 기술개발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엔지니어가 중심이 된 벤처기업의 경우 기술개발만 이루면 곧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예를 수없이 본다. 마케팅 전문가와 협조해 시장중심의 사업전략을 구상해야 매출도 일으키고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기술이 사업의 전부라는 독선이야말로 기업가 자신은 물론 투자자가 피해야 할 무서운 함정인 것이다.
만약 외국투자자가 국내 벤처기업을 투자대상으로 검토한다고 하자. 다음과 같은 점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첫째, 독자적인 노하우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둘째, 폐쇄적이며 1인 중심인 경영스타일을 개방적이며 조직중심의 경영으로 바꿀 의향은 없는가. 셋째, 투명한 회계정보를 통해 추정한 미래 현금흐름을 제시해 달라. 넷째, 투자지분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라. 다섯째, 주주의 의견과 이익을 최대한 존중할 의향이 있는가 등이다.
여기서 독창적인 사업구상능력과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음미하고자 한다. 이들이 곧 벤처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요체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국내기업의 경우 열에 여덟, 아홉은 남의 흉내를 낸 소위 「me-too-business」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 푸시기술을 그대로 모방한 인터넷 사업구상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이스라엘이나 아일랜드 벤처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서 간과하고 있는 분야를 집중 공략해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적은 자본과 인원으로 시장을 공략, 성장해 나가는 이면에는 흔히 파트너십이라고 말하는 동반자 정신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다. 과거 대기업이 「지분의 독점」을 최선으로 삼았다면 미래지향적인 벤처기업은 「지분의 공유」를 목표로 삼는다. 결국 기업가는 임직원은 물론 투자자들과 함께 기업가치가 높은 회사를 치밀한 계획과 실천을 통해 이룩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돈만 대는 투자자,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임직원들을 거느리고 일인천하를 꿈꾸며 개인회사 수준에 머물러 있는 벤처기업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들을 구체화해 큰 결실로 만들어 주는 증권시장을 보자. 수요 없는 시장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벤처전략은 벤처증권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는가에 사활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발행시장은 물론 제대로 된 유통시장이 없는 상태에서 좋은 사업계획을 세운 기업가가 정열을 불사른다고 해도 누가 그 회사 주식을 사겠는가. IMF 위기돌파의 대안이라고도 하는 벤처전략은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인규 무한기술투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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