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지도(Digital Map)라니 어쩐지 재미없고 딱딱해 보이는 이름이죠? 그냥 듣기 좋게 전자지도나 컴퓨터지도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쉽게 말해 지형이나 지물·지명정보를 디지털화해 CD롬에 담아낸 거니까요. 흔히 21세기 국가경쟁력의 하나로 손꼽는 NGIS, 즉 국가지리정보시스템의 밑그림이 바로 수치지도입니다. 도시형정보시스템(UIS:Urban Information System)을 구축하려는 지방자치단체부터 가스·상하수도·전기·통신시스템을 관리해야 하는 공공기관, 그리고 요즘 봇물 터지듯 생겨나는 생활 속의 GIS서비스업체까지 수치지도에서 기본데이터를 가져가면 빈틈이 없다는 얘기죠.』
지난 1일부터 전자지도를 판매해 GIS업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립지리원 김원익 원장은 이제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GIS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그가 디지털지도 탄생의 산파역을 맡게 된 것은 지도와 함께 걸어온 「외길인생」이 있었기 때문. 김 원장은 네덜란드 ITC(Institute for Aerospace Survey and Earth Science)에서 항공사진측량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국립지리원의 전신인 국립건설연구소 측량계 직원으로 발령을 받았던 68년부터 올해까지 31년째 지도와 함께 살아왔다.
알고 보면 김 원장이 세계적인 GIS교육기관인 ITC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사회의 첫발을 내디딘 곳은 건설부 수자원국. 66년부터 정부가 2만5천분의 1 크기의 종이지도를 만드는 데 착수하면서 유럽의 지도제작 선진국으로 1년반 동안 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당시 국립건설연구소뿐 아니라 건설부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연수자를 선발했고 지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김 원장이 발탁된 것.
『그땐 항공사진측량공학이 뭔지도 모르고 신청서를 냈죠. 수자원국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지겹도록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공부라고 합디다. 그거 좋겠구나 싶어 자원을 해놓고 나서야 지독하게 책과 씨름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비행기에 올라탈 때까지만 해도 후회막급이었어요.』
김 원장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68년부터 유학을 다녀온 동료들과 국립건설연구소 항측계에서 2만5천분의 1 지도를 만드는 일에 투입됐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험준한 산이라도 걸어 올라가야 했던 시절에 첨단기술인 항공사진측량기법을 도입하려니 실수도 많았다. 일일이 손으로 지도를 그렸던 도화실 직원들과 함께 야근을 할 때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지곤 했다.
『3교대로 24시간 지도를 그리는 도화실의 젊은 친구들이 졸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도 저희 항측계의 몫이었어요. 어느날인가는 낮에 실컷 놀다가 밤 당번으로 일을 하던 도화실 직원이 왔다갔다하는 사람을 보고 귀신소동을 벌인 일도 있습니다. 여고괴담이 아니라 으스스한 도화실괴담이 벌어진 거죠.』
우여곡절 끝에 74년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근대지도를 손에 쥐었을 때의 뿌듯함은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고 추억담을 털어놓는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2만5천분의 1 종이지도를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난 93년 국립지리원장으로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도 사실은 그 종이지도를 전자지도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대구와 마포 가스폭발이 일어나면서 정부에서는 전자지도가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이라는 마인드를 갖게 됐고 덕분에 95년부터 국립지리원이 비로소 수치지도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불과 3년만에 디지털지도 1단계 공정을 완성하고 판매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김 원장은 더없이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는다. 외국의 GIS전문가들은 도저히 믿으려 들지 않는 7백억원이란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이같은 일을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종이지도와 전자지도를 모두 뿌리내린 사람으로 기록되게 된 김 원장에게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측량기준점을 정비하는 일. 첨단지도를 만드려면 측량의 원점이 되는 컨트롤포인트를 정확히 찍어야 하는데 현재 전국 1만 6천개의 측량기준점은 정확도가 30만분의 1 정도. 이를 지도선진국 영국의 수준인 1백만분의 1로 하루빨리 끌어올리는 게 그의 꿈이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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