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알의 밀알이 되어 (31)

제6부 대망의 70년대-운용과학(OR)의 도입 (6)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전산실이 민간분야와 함께 군수작전과 같은 특수전문 분야 전산화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72년부터였다.

 70년대 KIST 전산실이 수행한 프로젝트들을 시기별로 보면 초기에는 경제기획원 예산업무, 중앙관상대 기상통제업무, 농림부 양정(糧政)업무, 관세청 관세업무, 전매청 전매업무 등 정부기관 업무로부터 시작하여 전화요금고지서 발급과 같은 공공부문을 거쳐 중반부터는 점차 특수부문과 민간부문 전산화로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71년을 전후해서 수행된 전산화요금고지서 발급업무 등 대규모 데이터 처리기반의 공공부문 전산화 경험은 성기수와 KIST 전산실 연구원들에게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계기가 됐다.

 특수부문과 민간부문의 프로젝트로는 증권·제약·제조·의료·워게임시뮬레이션(War Game Simulation) 개발 등 20여년이 훨씬 지난 현재로서도 전산화가 쉽지 않은 전문분야의 것들이었다. 이들 프로젝트는 특히 정부나 공공부문들과 달리 전산화에 앞서 개발자가 고유의 업무스타일에 대한 정보와 관련 전문지식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70년 7월부터 76년말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 전매청 전산화는 그런 점에서 수십만∼수백만 건의 데이터를 착오 없이 처리해야 하는 대입예비고사 채점 등과는 또 다른 경험과 교훈을 안겨다 줬던 프로젝트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전산실장 성기수는 프로젝트 추진에 앞서 합리적인 운영계획과 분명한 목적의식이 선행돼야 결과도 좋다는 즉, 진정한 전산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터득하게 됐다. 전산화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의 행동(업무)을 변화시키는 것이 돼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전매업무 전산화란 결국 담배 등 전매품의 반송이나 재고 등을 없게 만드는 것이 목표일 터였다. 그렇다면 사전에 본청과 지청의 업무현황, 전국의 도로사정, 산지의 상황 등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우선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성기수는 전매청의 전산화 과정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운용과학(OR: Operation Research)의 한 기법인 선형계획법(LP: Linear Programming)을 적용하게 된다.

 LP는 다원연립방정식과 같은 복잡한 수학계산에서 변수마다 대응되는 극소치와 극대치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해(解)에 이르는 기법. 이를테면 도로사정 등을 감안한 담배의 최적 수송경로를 수학적 배분을 통해 확보하게 하는 것이다. 66년, 그러니까 한국경제개발협회(KDA)에서 조사역으로 근무할 당시 11개 산업분야의 15년 중장기 경제개발계획을 계량(計量)해 낼 때 적용했던 기법이 바로 LP였다.

 컴퓨터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전산화 과정에 LP기법 등 OR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포트란 언어가 상용화된 60년대 말부터였다. OR의 적용은 전산화가 그만큼 세련되고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OR가 적용된 전매청 전산화에 대한 노하우는 효율적인 전시(戰時) 지원체제를 염두에 둔 워 게임 시뮬레이션 관련 「아틀라스(ATLAS)」 프로젝트에 활용됐다. 71년 8월에 시작돼 76년 말까지 계속된 「아틀라스」 프로젝트는 KIST전산실이 장차 시스템공학(System Engineering)의 요람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70년대 초반 한미연합사령부는 대형컴퓨터를 이용한 가상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좀더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군사작전 지원체제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신무기의 성능시험과 군 작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시뮬레이션 패키지들이 필요했다.

 이에 앞서 미국에서는 국방부 산하 여러 연구소들이 개발한 시뮬레이션 패키지들이 월남전 등에 적용돼 많은 효과를 보고 있었다. 「아틀라스」프로젝트는 미국에서 IBM컴퓨터로 개발된 패키지들을 한국에서 운용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나아가서는 한국형 가상전쟁 모델을 수립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었다.

 포트란 언어와 어셈블러를 약간 사용한 경험이 전부인 전산실연구원들에게 IBM용 패키지를 KIST전산실의 「CDC3300」컴퓨터에 이식시키는 작업은 난감한 일이었다. 게다가 시뮬레이션 패키지의 이론적 배경인 OR에 대해 아는 사람은 성기수 외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느냐는 오직 성기수 한사람 밖에 모를 일이었다.

 지금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컨버전(Conversion) 프로그램이나 에디터(Editor) 프로그램들이 없었던 상황에서 IBM원시코드를 CDC컴퓨터에 옮겨놓는 일은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아주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전투기 공중전 모형인 「캐스케이드(Cascade)」라는 패키지의 경우 원시코드를 라인프린터로 찍어내면 무려 한 박스가 넘는 초대규모 프로그램이었다.

 IBM컴퓨터의 특성을 일일이 분석하는 작업, 부족한 기억장치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변수를 적절하게 운용하는 방법 등은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컨버전된 프로그램을 디버깅(Debugging)하는 과정은 더욱 원시적이었다. 컴퓨터 이용시간이 한정돼 있어 작업은 주로 밤에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도 고통이었다.

 이런 과정은 75년까지 계속됐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국장 슈나이더(Schneider)중장, 한미기획단장 김재명(金在命, 교통부 장관 역임) 소장 등이 그 공로를 인정하여 KIST 전산실에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KIST 전산실은 76년 드디어 독자적인 워 게임 모델 개발에 나섰다. 개략적인 내용은 미국 미터(MITRE)연구소에서 구성한 것이지만 프로그램의 개발과 파라미터의 조정과 같은 주요 업무는 모두 KIST전산실의 소관이었다.

군의 방공포 레이더와 해안초소 등에서 침투하는 간첩·간첩선·비행기 등의 발견확률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실제로 미군·한국공군·미터연구소 연구원 등과 함께 헬기를 타고 목포(木浦) 인근해안을 날면서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모델 정보들을 수집하기도 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갈 무렵 실무지휘자였던 허문열(許文烈, 성균관대 교수)은 미터연구소 연구원들과 수학적 모델의 배분에 대해 팽팽한 논쟁을 벌였을 만큼 시뮬레이션 전문가가 돼 있었다.

 워 게임 시뮬레이션 기법은 70년대 중반 이후 국방부외에 건설부와 과기처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과기처가 지원한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시 철강 수요예측」이나 공군의 「항공기 선정을 위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 연구」 등이 이때 진행됐다. 또 건설부 프로젝트로는 「최적 항만시설규모 결정을 위한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북평항(北坪港, 지금의 동해항) 시멘트 수출전용부두, 부산항 컨테이너전용부두 등 사회간접시설을 컴퓨터로 설계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시 철강 수요예측」은 과기처 장관 최형섭(崔亨燮)이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던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브리핑이 있던 날 최형섭은 이런 말을 했다.

 『시스템공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입니다. 철강 수요예측 프로젝트는 비록 지원연구비는 작았지만 한국의 시스템공학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사용된 최초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아틀라스」팀에 참여했던 연구원들로는 초창기 최덕규(崔德圭, 아주대 교수), 백인섭(白寅燮, 아주대 교수), 권순덕(權淳德, 한맥소프트웨어 사장) 나중에 가세한 허문열, 박동순(朴東淳, 한국표준연구원 실장) 김진형(金鎭衡, KIST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 소장) 등으로 모두 각분야에서 시스템공학 일인자들이 됐다.

 한편 프로젝트 수주가 잇따르고 연구원 수도 50명에서 1백명선으로 증가하자, KIST 전산실은 71년 말부터 1호기인 「CDC3300」을 대체할 2호기의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1호기 도입 때와 달리 KIST 전산실이 자체적으로 흑자를 내기 시작했던 터라 2호기 도입에 주위의 반대나 재정적 부담은 거의 없었다. 연구원들의 경험이나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특성상 1호기와 같은 컨트롤데이터사(CDC)의 기종을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2년 10월에 도입된 CDC의 초대형컴퓨터 「사이버(Cyber)72」는 1호기보다 3배 이상의 처리능력을 갖고 있는 데다 차원 높은 터미널서비스가 일품이었다. 포트란과 코볼 언어의 기능도 크게 개선돼 있었다. 또 최신 산법(算法)언어인 알골(Algol)과 각종 데이터베이스 언어, 그리고 그토록 소원하던 OR용 LP패키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있었다.

 「사이버72」의 설치와 연구원 교육이 완전히 마무리되기까지는 8개월 가량이 소요됐다. 시스템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73년 여름이 되자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차원의 프로젝트들과 KIST전산실 업무 환경이 성기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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