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원자조작

숯과 다이아몬드는 겉으로만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이 두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를 분석해보면 같은 탄소(C)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탄소의 배열을 달리하면 우리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숯을 가지고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찍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예견했던 「연금술」이 최근 첨단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속속 그 가능성이 입증되고 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전무식, 전 KAIST 교수)이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스티븐 추 교수를 초청, 서울대 수학회관에서 「레이저로 원자를 조작한다」라는 주제로 개최한 특별강연에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 교수(물리학)를 비롯해 교수와 대학(원)생 2백여명이 참석해 「현대판 연금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날 강연에서 추 교수가 소개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상온에서 시속 약 1만㎞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원자의 성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학자들은 지난 몇십년 동안 움직이는 원자를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원자를 한곳에 붙잡아두고 이를 관측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주력했고, 마침내 지난 85년 레이저 빛에 의한 광압을 이용해 원자를 거의 정지상태까지 냉각시킨 후 이를 포획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전세계적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와 분자의 결합구조를 조작(Manipulation) 또는 조립(Fabrication)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0.1미크론(, 1미크론은 1백만분의 1m)에서 0.1㎚(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원자나 분자를 다루는 학문분야를 나노과학이라고 부른다. 수소 원자의 지름이 약 0.1㎚이므로 나노 세계는 곧 원자의 세계인 셈이다.

나노과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초 주사터널링현미경(스캐닝 터널링 마이크로스코프:STM)과 원자주사현미경(아토믹 포스 마이크로스코프:AFM)이라는 주사원자현미경이 개발되면서부터다.

STM은 미세한 탐침을 시료에 1㎚ 이하로 접근시키면 전자가 탐침과 시료 사이를 통과하는 현상, 즉 전류가 흐르는 것을 이용한 현미경이다. 이 전류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시료의 형상에 따라 탐침이 상하로 움직여야 한다. 표면을 주사(스캔)하는 탐침의 움직임을 분석하면 시료의 구조가 드러난다.

이들 현미경의 놀라운 점은 원자나 분자를 단순히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즉 원자를 끌거나 들어올리거나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노기술은 앞으로 물리 분야는 물론 화학, 생물, 전자, 기계 등 거의 모든 과학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기억소자 기술혁신은 나노 연구자들을 흥분시키는 분야. 지난 90년 미국 IBM의 아이글러 박사는 초저온에서 27개의 크세논 원자를 일렬로 움직여 「IBM」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보였다. 이것은 원자를 이용해 정보를 기억시킬 수 있음을 실증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반도체는 나노기술에 의해 한차원 더 높은 수준까지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 물리학과 임재순 교수는 『2010년께면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는 물질의 기본적인 한계에 직면해 더이상 집적도를 향상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원자의 전기적 특성을 이용한 나노기술이 이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나노기술에 대한 연구는 이론정립 단계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연구 성과물들도 국내외에서 속속 소개되고 있다.

포항공대 김윤 교수(화학과)는 하버드대학 C 리버 교수와 함께 지난 92년 1×1미크론 크기의 시료에 원자주사현미경 탐침으로 아인슈타인 방정식 「E=mc²」을 나노미터 크기로 새기는 데 성공했다.

또 미 IBM 알마덴연구소의 아이글러 박사팀도 주사터널링현미경으로 철(0) 원자들을 구리결정 표면에서 하나씩 하나씩 움직여 한자인 「原子」를 시료에 새기기도 했다. 이보다 정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미 위스콘신대 구켈 교수팀도 미크론 단위의 톱니바퀴를 만들어 나노기술의 상업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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