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소비 줄인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 2000년 4조엔 시장 예약

세계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은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과 맞물린 가전제품의 저소비전력화 경향에 힘입어 내년 이후 반도체시장의 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유망 사업이다.

최근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 아날로그 디바이스, NEC, 도시바 등 미국과 일본의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올해 말 양산을 목표로 하는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 사업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어 내년부터 이 시장을 둘러싼 세력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냉장고, 에어컨 등 백색가전에 시스템 온 칩을 사용하면 고속의 연산처리 능력으로 모터를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소비전력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의 핵심기술은 디지털 신호처리 프로세서(DSP). DSP는 마이크로 컨트롤러와 비교해 연산처리능력이 10배 이상 뛰어나 컴퓨레서 내부의 모터를 미세하게 조절해 준다.

기존 마이크로 컨트롤러 제어방식은 처리능력 한계로 인한 불규칙한 회전으로 전력 누수가 종종 발생할 뿐 아니라 전원을 넣거나 설정 온도를 조절할 때 전력 부하가 높게 걸리는 결점이 있었다.

이에 반해 DSP는 처리능력이 높아 모터로의 전류공급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모터를 매우 느린 속도로 회전시키는 등의 제어도 가능해 전력 누수와 소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 사업에서 가장 앞서 있는 업체는 DSP 분야 세계 최대업체인 TI. TI측은 현 DSP 성능을 고려할 때 「소비전력을 최대 50%, 소음도 1백분의 1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말부터 이 칩을 본격 양산할 계획으로 현재 마쓰시타전기, 도시바 등 일본 주요 가전업체들과 공급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일본 반도체업체들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일본 최대 반도체업체인 NEC는 주력 마이크로 컨트롤러에 DSP회로를 내장한 시스템 온 칩을 내년 상반기 중에 백색가전용으로 양산해 2001년까지 연간 2백만개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또 도시바와 히타치제작소도 같은 종류의 시스템 온 칩을 내년 중에 제품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반도체업계가 미국업체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이 향후 시스템 온 칩 시장의 세력구조를 결정하는 주요 격전장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스템 온 칩은 현재 약 6천억엔 규모의 세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칩은 향후 수년간 디지털정보가전, 휴대정보기기, 게임기, 카내비게이션시스템 등 폭넓은 제품의 핵심 부품으로 채용돼 오는 2000년에는 그 규모가 6배 이상 늘어난 3조∼4조엔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도체업체들이 이 거대 시장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각 제품 분야별로 진행되는 국지전에서 확실하게 하나씩 승리를 거둬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양산효과를 통해 가격싸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백색가전은 제품당 시장규모가 매우 클 뿐 아니라 수요도 매우 안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매력적인 시장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관련업계 전망에 따르면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를 합친 2001년 시점의 가전제품 세계시장 규모는 2억대를 훨씬 넘어선다.

최근 가전업계는 지구온난화 방지대책으로 비상이 걸려 있다. 일본의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소비전력이 가장 낮은 회사 제품을 기준으로 각 업체의 개발 목표치를 설정하는 「톱 러너 방식」을 도입한다. 일정 기준을 맞추지 못할 경우 업체명을 공개한다는 벌칙 규정도 마련된다.

백색가전용 마이크로 컨트롤러는 이익률이 매우 낮은 품목으로 반도체업체들의 수익 가운데 이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그러나 저소비전력화를 위해 가전업체들이 수익률 낮은 마이크로 컨트롤러 대신 채산성 높은 DSP내장 시스템 온 칩을 채용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백색가전시장에 대한 반도체업체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백색가전용 시스템 온 칩의 핵심기술이 되는 DSP는 TI, 루슨트테크놀로지, 아날로그디바이스 등 미국업체가 세계 시장의 90%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기술력, 가격경쟁력 모두에서 세계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미국시장은 물론 유럽시장에서도 이미 TI와 아날로그디바이스가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고, 일본시장에서도 TI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일본 반도체업계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DSP를 이용한 미국업체들의 공세가 시스템 온 칩 시장으로 이어질 경우 마이크로 컨트롤러로 구축했던 가전용 반도체시장에서의 압도적인 우위를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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