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글 부활에서 SW산업 부활로 (3)

마케팅

『공짜 심리를 없앨 기발한 마케팅 전략을 세워라.』

『그동안 고객의 소리에 귀를 더 기울였다면 이번 사태는 없었을 텐데.』

「한글」사태가 진정되자 PC통신에는 한글 사용자의 한글과컴퓨터에 대한 질책과 바람이 빗발치고 있다. 게재한 한글 가운데는 사용자의 불법복제 관행도 문제지만 고객 중심의 사업을 전개하지 못한 한컴의 부실한 마케팅이 더욱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소프트웨어(SW)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새로 태어난 SW는 대체로 세 종류의 사용자를 거치면서 발전하고 사라진다고 한다. 맨 먼저 만날 사용자는 새롭고 획기적인 SW를 선호하는 진보주의자이며 이어 객관적인 평가가 나올 때까지 구매의 득실을 이모저모 따져보는 실용주의자, 그리고 남들도 다 써야만 안심하고 쓰는 보수주의자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에 자부심이 큰 SW개발자들은 아무래도 진보주의자를 좋아하지만 이들의 구매력은 형편없다. 반면 실용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풍부한 구매력을 갖추고 있으나 좀처럼 설득당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SW 개발업체가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치밀한 마케팅과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

많은 SW 개발업체들이 좋은 SW를 개발해놓고도 변변하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은 바로 진보주의자의 마음만 사로잡았을 뿐 마케팅 능력 부재와 자금력 부족으로 실용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를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빗대어보면 진보주의자는 학생층, 실용주의자는 기업, 보수주의자는 일반 사용자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할 경우 학생들과 SW 개발자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누린 「한글」이 경쟁제품인 마이크로소프트의 「MS워드」에 기업시장을 고스란히 빼앗긴 것을 보면 한컴의 마케팅 전략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한컴의 새로운 투자자인 한글살리기 운동본부는 한컴의 새 경영자를 물색하면서 경영능력과 아울러 마케팅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SW 전문가들은 SW만큼 창의적인 마케팅이 요구되는 분야도 드물다고 말한다.

SW는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기술로 어우러져 있어 전문가가 아닌 이상 SW간의 장단점을 쉽게 비교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SW를 무료로 나눠줘야 할 필요가 있으며 또 사용자에 대한 사전교육이 필요할 때도 있다. 또 어떤 SW는 경쟁제품에 비해 제품력이 뒤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는데도 적절한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SW 개발업체들은 사용자를 구매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능 추가에서부터 영업활동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마케팅전략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사용자를 설득하는 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한컴을 비롯한 국내 SW 개발업체들은 대체로 마케팅 분야를 등한시해 뛰어난 제품개발력을 사장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잘 만들기만 하면 가만히 나둬도 잘 팔릴 텐데 굳이 마케팅에 힘을 소모할 필요가 있나』하는 기술전문 엔지이어들에게나 어울리는 발상은 무자비하고 냉혹한 SW시장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SW시장에서는 제품 성능이 조금 모자라는 SW라도 취약한 시장을 집중공략하고 「쓰기 편하고 다른 사용자들도 많이 쓰는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그렇지 않은 제품을 얼마든지 제칠 수 있다.

이같은 SW시장 특성은 「한글」의 실패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MS워드」는 한글 구현 능력과 같은 주요 기능에서 경쟁상품인 「한글」의 상대가 될 수 없으나 뛰어난 호환성 하나를 무기로 「돈이 되는」 기업시장을 공략해 한글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데 성공했다.

제품력은 그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초기 단계이 관심을 고조시키고 성공 이후의 제품 생명을 더욱 길게 하는 데만 기여할 뿐이다. SW업계는 「한글」사태를 통해 『이제는 제품이 아니라 마케팅이다』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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