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한국과학기술원 김종환 교수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과학관에는 이색 기자회견이 열렸다.

세계로봇축구연맹(FIRA)이 주최하는 「제3회 로봇월드컵 축구대회」의 개막식을 겸해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미국 CNN과 ABC, 프랑스 TF1 등 방송과 러시아, 루마니아, 스페인 등 세계 유수의 신문사 기자들이 대거 참석,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30여명에 달하는 외신기자들이 이날 집중적인 질문공세를 퍼부은 사람은 다름아닌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종환 교수(전기 및 전자공학과, Mbps1). 그는 지난 96년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7.5㎝인 로봇 3대가 한팀을 이뤄 겨루는 「마이크로로봇 월드컵」을 제안, 제1회 및 제2회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데 이어 이번에 월드컵이 열리는 현장으로 날아가 제3회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전세계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것이다.

축구 강국인 브라질, 영국 등을 포함, 9개국에서 총 18개 로봇팀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번 대회에서 김 교수가 이끌고 간 더키즈 등 8개 한국 로봇팀이 4개 종목중 3개 종목에서 우승을 휩쓰는 등 로봇축구대회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7월 3일 한국을 대표하는 더키즈팀과 브라질 상파울로대의 구아라나팀이 겨룬 결승전에서 한국팀이 현란한 개인기와 정확한 패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월등한 기량으로 상대 팀을 25대 0으로 제압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유심히 지켜본 프랑스의 한 유력 일간지 기자는 다음날 아침 신문에 「한국 선수(로봇)들은 마치 브라질 선수들처럼 날렵한 반면, 브라질 선수들은 독일 선수들처럼 덩치만 클 뿐 매우 둔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김 교수는 『하루 2백명에 가까운 관람객들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진행되는 경기를 꼬박 관람하면서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선진국인 유럽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저력같은 것을 느꼈다』며 부러워했다. 또 프랑스 국립과학관도 로봇들이 축구경기를 벌이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등 철저한 봉사정신을 발휘했다.

그러나 국내 로봇축구 팬들은 우리나라 로봇팀의 활약상을 접하기 어려웠다. 국내 방송, 신문 등 매스컴들이 월드컵 축구경기의 성적에만 관심을 가질 뿐, 로봇축구대회에 대한 소식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김 교수를 더욱 낙담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로봇축구, 더 나아가 과학행사에 대한 인식수준이 서방선진국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학대중화」를 제1의 정책방향으로 내걸고 있는 과학기술부 담당공무원들마저 로봇축구를 「연구개발과는 무관한 행사」로 규정, 이에 대한 지원책 마련을 귀찮아 하는 표정을 짓고 KAIST 등 대학의 동료교수들도 공공연히 「로봇축구행사를 어린아이들의 장난」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말을 할 때 심한 고독감마저 느낀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가 마이크로로봇 축구에 심취한 것은 다개체 로봇시스템을 연구하면서부터. 그는 지난 95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자율로봇경연대회에 「키티」라는 로봇을 출품, 우승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외국사람들이 경기규칙 등을 모두 만들어 놓은 각종 로봇경기에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한번 참신한 로봇경기대회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3대의 로봇이 한팀을 이뤄 축구경기를 벌이는 행사가 「로봇월드컵 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그 이듬해 첫선을 보였고 지금과 같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축제로 발돋움한 것이다.

김 교수는 또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관하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의 식전행사로 로봇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이를 전광판과 텔레비전방송 등을 통해 전세계에 동시에 중계함으로써 자라나는 지구촌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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