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안연구소 안철수 소장

컴퓨터 명의(名醫) 안철수씨(36).

그는 요즘 젊은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한컴사 이찬진 사장과 곧잘 비교된다. 매스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30대 벤처스타로 떠올랐다는 것은 두 사람의 공통점. 그러나 이 사장이 「한글 포기」라는 굴욕적 조건으로 MS사의 2천만달러 투자를 끌어들인 반면, 안 소장은 지난해 7월 백신업계 절대강자인 맥아피사가 먼저 제안한 1천만달러를 딱 잘라 거절했다.

한컴사 침몰 후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그 얘기를 들춰낼 때마다 그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 사장이 서울대 3년 후배일 뿐 아니라 지난 95년 V3 독점 판매권을 가져가면서 5억원을 선뜻 내놓은,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설립의 숨은 공로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이 그에게 「제2의 빌 게이츠」라는 부적절한 꼬리표를 붙여주는 순간 오늘 같은 결과는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벤처창업은 할 수 있겠지만 경영수완까지 발휘해 빌 게이츠처럼 대기업의 CEO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기술로 프로그래머의 우상이 된 테크니컬 위저드(Technical Wizard)들이 대부분 CEO가 아니라 기술담당 부회장격인 CTO(Chief Technology Officer)로 물러앉는다.

그에 비해 국내 대기업과 손잡을 기회도 놓치고 혼자 다윗과 골리앗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며 한국의 빌 게이츠가 돼야 했던 후배의 고충을 그는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다.

그렇다면 맥아피사의 1천만달러 투자를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평소에 소년처럼 홍조를 띤 얼굴로 수줍게 말하던 그답지 않게 단호한 목소리가 된다. 『한글은 도스에서 윈도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간과했지만 V3는 제2세대 네트워크 백신개발에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었습니다. 맥아피사는 조인트 벤처가 아니라 인수를 제안했고, 저는 V3의 장래를 담보로 한 어떤 제의도 고려할 수 없었습니다.』

안연구소는 지난해 매출액 18억원에 올해도 24억원이라는 소박한 규모지만 은행빚이 한푼도 없는 초우량 벤처다. 이제는 거의 사라질 운명이 된 도스부터 윈도NT, 인터넷 게이트웨이까지 바이러스의 침입경로를 모두 차단해주는 토털 솔루션 제품군을 확보한 백신업체는 세계적으로도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그러니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돈 때문에 사장시킬 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독자적으로 한국에 진출했던 맥아피사는 몇달 못가 지사를 폐쇄하고 철수했다.

그렇지만 불법복제 때문에 국산 소프트웨어 최고의 히트작이 무너지는 현실에서 과연 V3가 기술력만 가지고 시만텍, CA 등 공룡기업들과 끝까지 싸울 수 있겠냐는 회의론에도 그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기술이면 다 된다는 환상주의는 결코 없습니다. 초기시장은 기술싸움이지만 안정되면 결국 브랜드 이미지와 마케팅이 문제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패러다임 변화를 빨리 읽고 차세대 제품으로 공략한다면 한국시장 수성은 물론 수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삼성SDS와 손잡고 하반기 중국시장을 시작으로 2000년엔 미국시장에도 나가볼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의 제품이 아니라 3, 4세대 백신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V3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난 11년간 한눈 팔지 않고 외길을 걸어온 그의 장인정신, 2년 4개월의 유학을 마치고 오자마자 과로성 급성간염으로 쓰러졌던 성실성, 최선의 선택이라면 언젠가는 CEO 자리도 내놓을 수 있다는 겸손함. 이런 것들이 MS사가 무너뜨리지 못한 유일한 범용 소프트웨어인 백신 프로그램을 가지고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리려는 안철수씨에겐 돈보다 큰 자산이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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