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哲(LG종합기술원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 책임연구원 정보재해팀장)
오는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버그」 즉 「2000년(Y2k)표기문제」로 인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Y2k문제가 단지 정보처리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고 반도체칩을 내장한 대부분의 자동화기기, 통신기기, 가정용기기, 제어기기 등에 발생해 막대한 이차적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자동화된 대부분의 생산공장에는 수십에서 수만개의 컨트롤러, 전자센서, 마이크로칩 등이 있다. 이들은 날짜와 연도를 인식하도록 돼 있는데, 대부분 두자리수 인식구조로 되어 있어 Y2k문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Y2k문제는 그 기본 성격이 단순하지만 해결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특히 문제인식도 외에 인력, 비용, 시간과 같은 투입자원이 Y2k문제의 해결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런 직접적인 요인들은 한국의 문화적 특성과 정부의 정책방향, 국제적 압력, Y2k관련 정보유통과 같은 거시지표들의 전개 가능성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가능성의 조합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실제 발생할 수 있는 Y2k 전개양상을 3가지 시나리오로 정리해 보았다. 명칭은 「비상탈출」 「분규폭발」 「타이태닉」으로 붙였다. 이 세가지 시나리오의 내용은 상호배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후자로 가면서 파급효과가 점차 누적되는 특징을 갖는다.
비상탈출 시나리오
「비상탈출」은 보수적인 조직문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정책, 국제적인 협력분위기, 확산된 정보유통 및 문제인식도를 가정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 중 가장 낙관적인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 비해 그 해결 시점이 뒤늦은 감이 있지만, 98년중반 이후부터 Y2k문제는 언론과 정책당국, 관련조직들의 핵심 관심사로 부상한다. 이에 부응해 정부는 Y2k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책정하는 한편, 국무총리 산하 전담기구를 확대 개편, 「Y2k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이에따라 정부는 행정부문의 문제해결 지원뿐만 아니라 전문인력의 확보, 전산교육 기회의 확대, 기술지도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같은 취약한 민간부문의 지원에도 박차를 가한다. 또 외교채널을 통해 Y2k 해결을 위한 선진국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받는 협상이 진행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의 Y2k문제 해결은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급진전되며 국제적인 IT관련 자문기관인 가트너그룹은 마침내 Y2k 위험지역에서 한국을 제외시킨다.
그렇지만 인적, 물적자원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데 따른 부작용이 여전히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Y2k 비상대책반은 일정기간 존속하면서 각종 문제에 대비한다. 불확실성은 크게 감소했지만 위험의 잠재력은 여전히 존재하는 불안한 상태가 2000년 이후 1, 2년간 지속된다.
분규폭발 시나리오
제2금융권, 국가적 수준의 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부문이나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 등은 Y2k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하고 이들과 연계된 다른 기관이나 조직들에도 심각한 영향이 나타난다.
특히 일반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는 99년하반기부터 구체적인 Y2k 피해사례가 발생하고 이와 관련한 법령 정비나 조정기구의 미비로 솔루션업체와 기업, 대기업과 하청기업, 행정당국과 기업간에 각종 분쟁과 소송이 폭증한다. 회계사, 협력업체, 증권회사, 소프트웨어개발업체, 컨설턴트 등이 법적 소송의 주요 타깃이 된다. 이들 간의 법적 공방은 소송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급기야는 소송비용이 전체 해결비용을 초과하는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더욱이 2000년이 임박하면서 해결비용은 한없이 치솟고 Y2k 상황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해외 솔루션업체들은 한국을 더없이 좋은 시장으로 보고 공략한다.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론이 부상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공신력이 크게 약화되고 이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정당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민간부문의 경우 Y2k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응을 한 기업이나 조직들은 상대적으로 강화된 경쟁력을 무기로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를 맞이한다.
타이태닉 시나리오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는 「타이태닉」은 경제적 위기관리의 실패와 내각제 공방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어 Y2k문제의 해결이 어렵게 되며 이는 다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여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는 악순환의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
99년중반에 접어들어 한국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과 다국적 기업들이 Y2k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상당수의 국내 기업에 대해 거래 중단을 통보해 온다. 같은 시점에 국제 신용평가기관은 곧 한국이 IMF 위기에 Y2k 위기가 겹치는 「이중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국가신용도를 하향 조정한다. 이에 영향을 받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사태를 관망하며 투자를 중단하자 환율과 증시는 더욱 침체한다.
Y2k문제가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국내 언론은 2000년 1월 1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Y2k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집중 보도한다. 이러한 와중에 원자력발전소의 시설통제장치가 오류를 일으켜 방사능이 누출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며 제조업 생산라인의 중단으로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최악으로 곤두박질치는 등 막연한 위기의식은 현실화하기 시작한다. 경제적, 심리적 공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국민들의 총체적 위기감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Y2k문제의 미해결이 최소한 향후 3, 4년 동안 한국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가운데 경제위기와 Y2k 위기의 파고를 동시에 헤쳐나가야 하는 한국사회는 해방이후 최대의 시련에 봉착한다.
아무튼 Y2k문제는 새로운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일종의 「액땜」인지도 모른다.그런데 정보화가 성숙하고 각종 정보통신기기에의 의존성이 높아짐에 따라 초기 개발시는 미처 예상도 하지 못했던 오류들로 인하여 피해를 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전산전문가들은 Y2k를 제외하고도 향후 50년간 적어도 6천만개의 응용소프트웨어들이 각종 날짜표기문제로 인해 수정돼야 할 것이며, 이러한 수정에 필요한 비용은 총 3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것들은 Y2k와 마찬가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정보재해」의 실례들이다.
따라서 이에 보다 근본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것에서 진취적 것으로 우리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부처간 부서간 이기주의, 집단과 집단간 구분의식, 사후처리적인 해결방식의 선호, 「냄비형」 위기관리의식 등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 문화의 역기능적 요소들은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 위기상황에 대한 통합적 예측과 관리, 합리적 절차의 제도화, 예방적 사고의 확산과 같이 보다 진취적이고 민주적이며 현장지향적인 문화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에만 고도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지배하는 정보사회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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