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용어로 말하자면 머리 속을 깨끗하게 「포맷(Format)」시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수 읽기를 하다 보면 구름처럼 잔뜩 끼었던 상념들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게 갠 상태가 되거든요. 그래서 복잡한 일로 시달릴 때면 기원으로 달려가곤 하죠.』
전자부품업체 팀코리아의 김거부 사장(36세)은 바둑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처럼 자신있게 풀어 놓는다.
『게다가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죠. 포석단계는 어려서 부모 슬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고 중반의 세 다툼은 삶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셈이고 끝내기는 인생의 마무리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둑으로 인생을 배우는 거죠.』
김 사장에게 바둑은 집안내력이기도 하다. 명절만 되면 그는 부친과 세 형님과 함께 「편 바둑」으로 시간을 보낸다. 가장 실력이 딸리는 사람은 3급 바둑을 두는 김 사장이다. 팔십 고령을 넘긴 부친에게는 두 점을 놓고 둬야 할 정도다. 아마추어 수준이긴 하지만 집안 남자들이 모두 바둑 마니아인 셈.
바둑에 심취하게 된 것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한 친구와 우연히 대국을 한 후부터. 처음 바둑판 앞에 앉았던 것은 6살 무렵으로 집안어른들에게 「이러다 우리 가문에 바둑신동 나겠다」는 과장스러운 추켜세움도 받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후 웬지 흥미를 잃었다. 대학때 3급 바둑을 두던 그 친구에게 9점을 깔고도 이기지 못해 충격을 받은 그는 방학이 되자 한달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바둑책을 끼고 지냈다.
『개강을 하자마자 친구를 찾아가 내기 바둑을 청했습니다. 물론 9점을 놓고서요. 내리 3판을 이겨야 한점씩 깍아주는 규정때문에 거의 27판을 겨뤄야 했습니다. 맞바둑 실력이 됐던 거죠. 지금도 그 친구 나만 만나면 순 사기바둑이었다며 농을 던지곤 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바둑이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 이상 기원에 갈 정도로 놓칠 수 없는 취미가 됐다. 대학시절 바둑서클 선후배들과는 지금도 만나면 바둑돌부터 잡는다.
그렇게 바둑을 즐기다 보니 낭패를 당한 경험도 없지 않다. 부인이 첫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최소한 복도에서 두시간은 기다려야 할테니 근처에서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기원으로 들어간 것이 두판까지 이어지고 다시 돌아와보니 벌써 딸을 낳은 뒤였다는 것. 장모님에게 민망한 것은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아내의 원망을 사고 있다.
프로기사는 그렇지도 않지만 아마추어의 경우 기풍과 라이프스타일은 닮는다는 말이 있다. 법원앞 일품기원에서 가끔 지도대국을 해주는 프로기사 김수영씨는 김 사장의 기풍을 한마디로 「두텁게 두는 바둑」이라고 평한다고 한다. 『쌈지를 트면 질 것이니, 대해(大海)로 나가라』고 그는 입버릇처럼 후배들에게 말한다. 실리를 잃는 한이 있어도 호기롭게 둬야 한다는 그의 바둑철학 때문이다.
바둑 외에 국민학교 2학년때 50원을 모아 농협에서 낚싯대 2개를 구입한 후부터 시작된 낚시도 그의 취미.
반도체 생산공정에 필요한 스페어 파트와 일반 전자부품을 취급하는 팀코리아가 번창할 경우엔 한국기원에 버금가는 아마추어 바둑회관을 건립해 후원을 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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